포항스틸러스가 일단 출발은 좋다.
지난주 FA컵 경남과 K리그 클래식 7라운드에서 전북에 비록 덜미를 잡히긴 했으나 그래도 시즌 초반 페이스는 양호한 편이다. 지난 15일 K리그 클래식 6라운드 홈경기에서 포항스틸러스는 대구FC를 2-1로 꺾으며 짜릿한 승부를 연출해 포항홈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지난해 12월 최순호 감독이 포항 사령탑으로 처음 부임한 뒤 북구 환여동 모 횟집에서 포항에 사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저녁자리를 했다. 그 때만 해도 최 감독은 반신반의였다. 포스코의 지원금이 줄어들어 주전급 선수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최 감독에게 “내년 시즌(올 시즌) 어떻게 보느냐”고 슬쩍 물어봤다. 한참 뜸을 들인 후 그는 “중위권인 6~7위만 해도 성공 아닐까”로 답했다. 지인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난세 속에 명가의 수장을 맡은 그의 현실적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포항의 예산은 K리그 클래식 중하위권 수준이다. 재정이 어렵다보니 지난 이적시장에 신화용, 신광훈, 김원일, 문창진, 박선주, 김준수 등 팀내 주전급들을 대거 방출시켰다. 이 때문에 올 시즌 포항을 하위 스플릿 후보로 꼽은 이들도 많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등권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개막전 울산 현대에게 1-2로 맥없이 무너질 때만 하더라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포항이 2라운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순호식 포항축구`가 예상보다 빨리 자리를 잡는 느낌이다. 포항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시즌 초반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경기내용도 좋다. 7라운드까지 4승 1무2패로 3위를 달리고 있다. 그냥 이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7경기에서 포항은 12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2골을 넣으며 클래식 최고의 득점력을 과시하고 있다. 양동현, 심동운, 손준호, 룰리나, 서보민, 권완규 등 주전들이 골고루 골을 터뜨리며 제 몫을 다해주고 있다. 지난 휴일 전북에게 덜미를 잡히며 제동이 걸린게 아쉽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골키퍼 신화용이 떠난 빈자리를 3년만에 주전을 꿰찬 강현무가 말끔히 메워주고 있다. 2라운드 광주전에 깜짝 데뷔전을 가진 강현무는 무실점으로 방어한 뒤 그라운드에서 펑펑 울었다. 그는 이제 포항의 주전 골키퍼로 변신했다.
그렇다면 최순호식 포항축구는 어떤 것일까. 예전 포항 감독을 맡았을 당시에는 자신의 축구를 구사하지 못했다. 울산 현대미포조선과 강원FC 감독 시절에는 어느 정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포항의 사령탑으로 복귀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홈경기 대구FC전에서도 1골 차 리드 상황인데도 후반 막판 공격수 이상기를 투입하는 모험을 걸었다. 다들 수비수가 교체될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공격을 택했다. 최순호식 포항축구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지키기보다는 공격을 통해 막판까지 상대를 압박하고 추가골까지 노리겠다는 작전이다.
전북을 제외한 초반 6경기의 상대가 중하위권 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섣불리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최순호식 포항축구가 분명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스틸야드를 찾는 포항 축구팬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홈 개막전의 만석 기록에 이어 매 경기마다 9천~1만명에 달하는 팬들이 찾는다. 모기업 포스코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축구광` 안동일 포항제철소장은 홈경기 때마다 스틸야드를 찾아 선수들을 격려해 준다. 모처럼 포항에 부는 축구열기가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순호식 포항축구가 포항에서 완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