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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계산기`

등록일 2017-04-24 02:01 게재일 2017-04-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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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문명의 이기(利器)는 인류에게 늘 행복만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인 컴퓨터는 아직도 인간에게 검증이 끝나지 않은 미지의 총아(寵兒)다. 분명한 것은 상상초월의 전자기술이 한순간 인간을 바보로 만들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을 컴퓨터 칩에 맡기고 사는 많은 사람들은 가족의 전화번호마저 잊어버리기 일쑤다. 우리는 간단한 덧셈조차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는 암산(暗算)퇴행의 시대를 살고 있다.

`5·9장미대선` 선거전이 끝 모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열기가 너무 뜨거워 과연 임계압력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각 대선후보들의 과거지사들이 시시콜콜 도마에 올라 무차별 난도질을 당한다.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선거캠프의 모습도 날로 사나워지고 있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아귀들의 지옥전쟁 같은 지독한 난타전에 국민들은 넋을 잃을 정도다.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사생결단을 겨루던 종래의 선거패턴이 사라졌다. `보수는 분열로 망하고, 진보는 자충수로 망한다`는 새로운 속설이 나돌기도 한다. 진보 또는 중도 정치세력에게 이번 선거는 `굴러 들어온 떡`이다. 혈투를 벌이는 그들의 서슬 반대편에서, 보수는 자기들끼리 멱살잡이에 여념이 없는 꼴이다.

흥미로운 반전드라마가 펼쳐지는 기적을 보고 싶기도 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이미 전력을 몽땅 쏟아 붓는 조직 총동원전이 시작됐고, 변별력을 키우는 새로운 선거형식이란 무의미해지고 있다. 혼전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예측은 흔들릴 것이다. 어떤 계산기가 정확한지가 관건이 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보수 후보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걱정스러운 구석이 적지 않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꿈꾸는 `좌3 우1` 4자구도 선거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오르내리게 하는 요인이 보수 표심으로 드러나면서 개연성을 얻지 못하는 양상이다. `홍준표를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는 이른바 `홍찍문` 구호가 설득력을 놓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둘로 나뉜 보수후보들의 지지율 분포에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큰 틀에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어떻게든 전체 선거구도를 양자대결로 만들어 승부를 보겠다는 결단이다. `후보단일화`나 `후보사퇴`라는 카드로 가능하다. 또 하나는 이번 선거와 관계없이 미래를 보겠다는 판단이다. `야당`을 각오하고 끝까지 완주해 민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후보가 여럿이니 끝까지 가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심산은 각종 선거 때마다 반드시 나타나는 오아시스 같은 착시(錯視)다. 꼴등에게 물어보아도, 자기가 꼭 당선될 줄 알았다고 답변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분열`로 선거를 망친 역사는 냉혹하다.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후보들의 예측 연산(演算)이 오류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1997년 15대,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 이회창의 낙선이 그랬다. 불과 30%대의 득표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2014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와 경기도교육감 선거 결과도 추레한 보수분열의 결과물이었다. 하물며 진보와 중도의 선두다툼으로 펼쳐지고 있는 이번 선거에서 갈라진 보수 후보들 계산기의 정상작동 여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종요롭다. 그들의 계산기가 오작동하고 있는 한 유권자들은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대통령 탄핵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려 부랴사랴 치러지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일촉즉발의 예민한 쟁점들이 분초를 다투며 튀어 오른다. 유권자들이 알아서 대세를 갈라 주리라는 믿음은, 가상(嘉尙)하긴 할 망정 실현되기에는 어림없다. 지금부터는 대선후보들의 계산기 성능이 핵심변수다. 고장 난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사코 달려가는 선거전이 또 다른 대한민국 불행의 씨앗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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