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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크라티온`이 정답이다

등록일 2017-04-18 02:01 게재일 2017-04-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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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판크라티온(Pancration)`은 BC 648년 제33회 고대올림픽대회(올림피아드)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많은 인기를 누린 격렬한 실전무예다. 습한 모래나 진흙 위에서 맨손으로 붙어 주먹지르기·발차기·꺾기·던지기·조르기 등 모든 기술을 사용한다. 물어뜯기와 눈 후비기만은 허용되지 않는 파울이었고,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경기를 계속하는 방식이었다.

1976년 6월에 벌어진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대결을 시발점으로 판크라티온은 새로운 격투스포츠 `이종격투기`로 부활돼 각광받고 있다. 이종격투기는 1993년 일본에서 시작된 K-1과 프라이드FC, 미국의 UFC 등이 있다. 사람들이 이종격투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위(作爲)가 일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맨몸 `진검승부`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초기 `고무신 선거`·`막걸리 선거`로 시작된 선거풍토는 여전히 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987년 13대 대선 땐 민정당 노태우 후보 측이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가 LG그룹으로부터 150억 원의 현금을 실은 2.5t 트럭을 통째로 받은 사실이 밝혀져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2004년 5월 21일 대검중앙수사부는 대기업들로부터 이회창 후보 측이 823억, 노무현 대통령 측이 113억을 받았다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선거비용으로 쓸 수 있는 금액은 대선후보 1인당 509억9천400만원까지다. 각 후보 진영마다 거액의 선거자금을 조달하는 문제로 비상이 걸려 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구태의연한 고비용 선거운동 양식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미디어 혁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프라인 공간에서 아직도 거액이 동원되는 선거가 통용되고 있는 현실은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유권자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전파공간을 도외시하는 갑론을박은 유치하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 도입키로 한 `스탠딩 토론`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이 “발언권이 주어졌을 때만 서서 하자”고 제안한 게 도화선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에서 “두 시간도 서 있지 못하겠다는 것이냐”고 비난하고 나섰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측도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가세했다. 이에 문 후보가 직접 `어떤 형식이든 자신 있다`고 스탠딩 토론을 수용하며 역공을 펴고 있다. 우리는 과거 대선에서 지지율이 높은 후보일수록 `토론`을 극구 회피해왔던 비겁한 모습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온전히 `불리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조직선거에 맛 들린 선거꾼들의 엉뚱한 주장이 난무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이 절대 부족한 이번 대선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는 방안은 `이종격투기` 방식의 생방송 `끝장토론` 뿐이다.

`인기발언 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는 횟수를 늘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양자토론이든 다자토론이든 여러 차례 지속해나가면 진짜와 가짜는 판별이 나게 돼 있다. 거듭되는 라이브토론은 말만 번지르르한 인물과 비전과 진정성을 가진 능력자를 가려내주기 마련이다. 국민들은 8각의 옥타곤(철조망 링) 안에서 모든 작위를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만을 겨루는 현대판 `판크라티온` 방식의 토론경쟁을 보고 싶어 한다.

패거리들을 몰고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떡볶이를 받아먹거나 난전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와 어색한 포옹을 하는 대선후보의 제스처는 이제 식상하다. 그게 대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지도자를 뽑는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생방송 `끝장토론`이 정답이다. 온갖 핑계를 대며 맞짱토론을 거부하는 후보는 그 역량이 수상쩍다고 보면 대략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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