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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며 자란다

등록일 2017-04-13 00:35 게재일 2017-04-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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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아이들이 싸우면 어른들은 은근히 이를 즐긴다.

다툼은 늘 아주 작은 일로부터 시작하지만 이게 슬슬 커지면서 갈등으로 번지고 급기야 어른 싸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는 싸우면서 자란다`는 생각을 한 자락 깔고 사뭇 즐기며 지켜보는 것이다. 아마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실제로 쑥쑥 자라가기를 기대하는 것 아닐까.

오래 전 한 조사에서, 싸움을 한 번도 안 했다는 친구들이 학교에서 19%, 집에서는 13% 밖에 안 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부모들의 30% 정도는 아이들이 싸울 때, `다치지만 않으면 두고 본다`고 했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조용하게 공부만 잘 하던 친구들보다는 이리저리 치이고 내몰리며 갈등의 자리를 만들고 또 그런 자리에 섰던 친구들이 오히려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한 때, 이 나라의 온 백성을 국민총화와 일치단결로 묶으며 한 방향으로만 몰아 세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어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 시절에는 무엇에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은 `위험한`일이었고 `불온한` 발상이었다. 나라의 모든 일들이 몇 안 되는 사람들의 기획과 조직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흘러가야 했던 것이다. 과연, 그래서 우리는 성공했는가. 제법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흡족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남들이 우리를 부러워도 한다는데, 정작 우리들 마음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싸우며 자라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닌 것이다. 어른도 사회도 그리고 나라도 겨루며 다투며 자라야 하는 것이다. 고여있던 물이 썩어 들어갔던 일을 우리는 이미 목격하지 않았는가. 건강하고 싱싱한 느낌들, 생각들, 의견들을 나누고 겨루는 가운데 보다 나은 방향이 보이고 더욱 행복한 결론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진화론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살펴보니,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은 절대로 아니지만 `다양성`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줄 아는 유일한 종이었다. 미국의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도 한 연설에서 `우리들 안의 다른 생각들, 다른 소망들, 다른 꿈들이 바로 우리들 모두의 힘`이라고 하였다. 소설가 마야 안젤로우(Maya Angelou)도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여러 가지 색깔이 함께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럴까. 혹 그냥 잡다하고 복잡해 지는 것은 아닐까. 자칫 혼란스럽고 어지러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결국 보다 든든한 사회를 만들고 나라의 저력도 다양성을 통하여 생겨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우리들 가운데 일부러 틀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각자의 처지에 따라 바람직한 소망과 생각들을 내어놓고 다루며 혹 바로 잡아도 가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결론으로 모아갈 적에야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처음 가졌던 아슬아슬한 느낌도 이겨 내면서 우리가 가진 매듭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그간 우리에게 다툼이나 갈등이 있었다면, 이를 차라리 나은 길로 나아가기 위한 주춧돌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아직도 남아있는 골칫거리와 싸움거리가 있다면, 이를 오히려 발전의 기틀로 삼기로 하자. 아이는 어른들의 선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싸우면서 몸과 마음이 자라는 걸 믿는다면, 어른들도 겨루면서 내일의 희망을 건져 올리기로 하자.

우리에게는 어설픈 이념의 다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생각의 겨룸이 있을 뿐이다. 어른도 싸우면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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