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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에 달린 내일

등록일 2017-04-06 02:01 게재일 2017-04-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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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4월 첫 날에 소중한 은사 한 분을 보내 드렸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셨던 김종길 교수께서 남기신 시 한 편은 이렇게 권하고 있다.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라.” -`설날 아침에`

나라는 과연 설날 아침을 또다시 기다리듯이, 새 지도자를 가려내기 위하여 분주한 모습이다. 마침 정파마다 각각 대통령 후보들을 찾았다고 한다. 저마다 혜안과 묘수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하는 말마다 솔깃한 소리들 일색인 것이다. 대세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역전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우리 보통 시민들은 날마다 새겨야 하지 않을까. 이 일이 진정으로 나라를 바로 섬기기 위함이며 국민을 걱정없이 살게 하려 함이라면, 정작 누군가를 가려 뽑아야 하는 국민들이 이 모든 언변과 행태 한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 가운데 참으로 `국민`이 있는지 살필 일이다.

지난 겨울 동안 시민들이 만들어 낸 위대한 역사의 매듭을 잘 엮어내기 위하여,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에게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기대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먼저, 열려 있는가. 시민들을 향한 그의 마음과 눈이 열려 있는가. 시민의 생각을 헤아리고 그들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소신과 주장의 벽이 높은 나머지, 그들만의 세상을 펼쳐가는 일을 우리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시민 사회의 아픔을 공감하고 가장 낮은 골짜기를 배려하는 지도자를 우리는 원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소통`이 중요하겠지만, 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적에는 특별히 `열려있을 소통`을 기대하는 것이다.

둘째, 함께 하는가. `민주주의`의 처음 생각은 `시민들 스스로 다스리기`를 구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믿어 맡겨진 직을 수행하는 이로서, 너른 지평의 중지를 반듯하게 모아 바른 판단을 만들어 내는 리더십을 바라는 것이다.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늘 새기면서 모든 일에 임하는 당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 판단의 기초를 `국민의 처지`에 두고 생각을 쌓아 올리는 지도자를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글이 없어 나누지 못하는 `어린 백성을 어엿비 너겨` 세종은 한글을 만들지 않았던가.

셋째, 희망을 말하는가. 과연 어려움으로 가득한 경제 상황이며 난관으로 에워 쌓인 국제 환경이다. 이를 다시 살려내고 이겨낼만한 철학과 지혜가 그에게 있는가. 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을 터에, 역량과 지략을 가진 인사들을 덕으로 모아낼 수 있을 것인가. 온 나라를 다시 한번 `희망을 이야기하는` 공동체로 엮어낼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에 대하여 여러 갈래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칫 어려움의 나락으로 떨어질 만한 위기의 국면에서, 나라와 시민들을 한 마음으로 서로 다독이게 하고 함께하는 영감을 불러내어 미국을 미국답게 새롭게 이끌어 낸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 겨우 한 달 후,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만날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들 손에 달렸으며 선택의 기준은 분명해졌다. 국민을 향하여 항상 열려 있으며, 모든 일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 만들어 내고, 날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가 그 간의 의기소침함을 벗고 희망의 대한민국으로 다시 솟아오르는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는 못 만나 뵈올 김종길 시인께서 권하는 대로, 험하고 각박한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좀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는 지도자를 만났으면 하고 또 그런 국민들이 모두 되었으면 한다. 내일은 우리 손에 달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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