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규범이 무너지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은 이미 무력해졌고 새로운 질서는 여전히 가시권 밖에 있다.
밤낮 없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는 시위대가 서울 도심을 뒤덮고 있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참극이 우려될 만큼 불안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대다수의 국민은 이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대통령 파면이란 격랑에 휘말린 대한민국호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왜 우리 한국이란 나라는 변화되지 못하는 것인가. 살고 싶고 가고 싶은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내일 우리가 살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에 대해 도덕의 기초로서 공리 혹은 최대 행복 원리를 주장하고 있는 근대 자유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년)이 쓴 `자유론`은 유사한 해답을 제시한다.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함에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요소인 자유와 책임이 한국의 헌법·정치에서 질식한 상태가 됐음을 알 수 있다.
밀은 각 개인이 자신과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것은 각 개인의 절대적인 자유라고 봤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각 개인의 자유를 행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타인과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자기 행위에 대한 법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자유의 범위를 넘어서는 방종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에서 `원한다`는 것은 아무런 방향 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자가 원하는 것은 진정 자신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 즉 자유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또한 밀은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각자를 끌어올리는 것, 즉 자기발전을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으로 삼았다.
밀에 따르면,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덕성과 지성이 좋은 정부의 첫 번째 요소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도덕적, 지적 자질을 잘 발전시킬 수 있는 지 여부가 모든 정부의 탁월함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각자가 정부의 혁신을 요구하는 외침을 하는 대신 정부의 요구에 부합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 반성해 봐야 한다.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고 공허한 일방형 외침 대신 정부와 국민들이 함께 뜻을 모아 `살고 싶고 가고 싶은 나라`로 변화시킨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도시들도 많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민주주의`라는 말은 고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처음 사용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정치체제가 아테네 고유의 창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뒤 그 특징이 `소수의 특권층 대신 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혜택을 주는 것`에 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지닌 체제가 곧 `민주주의`라고 규정한다.
밀도 가장 이상적인 정부형태에 대해 `완벽하게` 민주적인 정부가 그 답이 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정부를 더 잘 발전시키고 국민의 성격을 더 훌륭하고 고상한 형태로 바뀌도록 하는 데 이것을 능가하는 정부형태가 없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자. 그렇게 되면 정부도 국민의 뜻을 외면한 채 일방적인 정책은 펼치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의 뜻과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개혁과 변화가 추진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작정 기다려도 이뤄지지 않는 혁신을 기대하는 대신 몸살을 앓는 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번 더 고민하며, 나 자신에 자유로울 수 있는 우리 스스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식인의 모습이다.
밀도 말했듯이, 그 나라 지식인의 수준에 비례해서 정치의 질과 내용도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