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권력의 저주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7-03-13 02:01 게재일 2017-03-13 19면
스크랩버튼
한국사에서 탄핵1호는 신라 25대 진지왕이다. 영토를 많이 넓힌 진흥왕의 차남인데, 장남이 일찍 죽자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 과정에서 거칠부의 역할이 컸다. 그는 군인이고 정치가이며 역사학자였고, 막강 고구려와 싸워 이기는 등 진흥왕이 가장 아낀 인물이고, 신라의 역사책 `국사(國史)`를 편찬했다. 진지왕은 거칠부를 상대등(국무총리)으로 영입해 국정을 맡기고, 왕 자신은 여색이나 탐하며 기쁨조와 어울려 놀았다. 왕이 이러니 백제 등의 외침이 잦았고,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579년 진지왕 등극 4년이 되던 해에 거칠부가 죽었다. 막강 배후세력이 쓰러지니 불만세력들이 왁작 일어났다. 화백회의가 열렸고, 국정혼란과 황음을 들어 만장일치로 왕을 폐위시켰다. 탄핵되던 해에 왕 또한 세상을 떴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김용춘과 비형랑이다. 용춘은 김춘추를 낳았고, 김유신이 받들어 그는 태종 무열왕이 됐다. 탄핵당한 왕의 손자가 임금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막강한 김유신세력이 밀어주어 가능했다. 영국 헨리8세가 앤 왕비를 간통죄로 죽였지만, 그녀의 딸이 영국 여왕에 등극한 일과 유사하다.

미국은 44명의 대통령이 있었지만 탄핵당한 이는 전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별연설을 할 때는 군중들이 “4년 더!”를 외쳤고, 폐회 20분이 자나도록 군중들은 헤어지지 않아 오바마는 `커튼콜`을 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불행·불운을 겪었다. 이념적으로 분단된 국가의 서글픈 운명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남북이 갈라지고, 동서로 등지고, 세대간이 갈등하고, 부모 자식간에도 생각이 달라 남처럼 지내는, 갈갈이 찢기고 뜯긴 한국에서 권력의 자리란 송곳방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계도 불행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는 공산주의자의 흉탄에 잃고, 아버지는 측근의 총탄에 갔고, 자신은 취임 4년만에 탄핵됐다. `자원의 저주`도 있지만 `권력의 저주`도 무섭다. 한국에서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은 `재앙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인데, 왜 그리 권좌에 연연하는지.

/서동훈(칼럼니스트)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