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년 진지왕 등극 4년이 되던 해에 거칠부가 죽었다. 막강 배후세력이 쓰러지니 불만세력들이 왁작 일어났다. 화백회의가 열렸고, 국정혼란과 황음을 들어 만장일치로 왕을 폐위시켰다. 탄핵되던 해에 왕 또한 세상을 떴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김용춘과 비형랑이다. 용춘은 김춘추를 낳았고, 김유신이 받들어 그는 태종 무열왕이 됐다. 탄핵당한 왕의 손자가 임금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막강한 김유신세력이 밀어주어 가능했다. 영국 헨리8세가 앤 왕비를 간통죄로 죽였지만, 그녀의 딸이 영국 여왕에 등극한 일과 유사하다.
미국은 44명의 대통령이 있었지만 탄핵당한 이는 전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별연설을 할 때는 군중들이 “4년 더!”를 외쳤고, 폐회 20분이 자나도록 군중들은 헤어지지 않아 오바마는 `커튼콜`을 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불행·불운을 겪었다. 이념적으로 분단된 국가의 서글픈 운명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남북이 갈라지고, 동서로 등지고, 세대간이 갈등하고, 부모 자식간에도 생각이 달라 남처럼 지내는, 갈갈이 찢기고 뜯긴 한국에서 권력의 자리란 송곳방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계도 불행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는 공산주의자의 흉탄에 잃고, 아버지는 측근의 총탄에 갔고, 자신은 취임 4년만에 탄핵됐다. `자원의 저주`도 있지만 `권력의 저주`도 무섭다. 한국에서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은 `재앙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인데, 왜 그리 권좌에 연연하는지.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