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 일치`라는 개념이 있다. 15세기 독일의 추기경이자 수학자·철학자인 니콜라우스 쿠사누스(Nicolaus Cusanus)가 신의 무한성을 입증하기 위해 내놓은 이론이다. 쿠사누스는 원을 무한히 축소하면 원주(圓柱)에 일치하고 무한히 확대하면 원주의 곡률(曲)은 차차 0에 이르러 곡선은 직선에 가까워지며, 삼각형의 한 변을 무한히 확대하면 일직선이 된다는 원리를 동원해 설명했다.
이 개념은 두 눈이 반대방향을 응시하고 날갯죽지의 두 근육도 엇나가게 작동하지만 결과적으로 한 곳으로 날아가는 새날개의 원리와 함께 자주 인용된다. 언론인 출신으로서 진보 사회운동가였던 고(故) 리영희 교수는 저서에서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인용`으로 귀결되면서 온 나라가 황망의 끌탕이다. 헌정 사상 최초라는 오명을 기록한 박 대통령의 파면은 보수정치의 몰락을 상징한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기치로 내걸고 이 나라의 정치를 주도해온 보수정치는 입지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현실화되고 있는 조기대선 국면에서 보수주의를 대표할 변변한 후보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대한민국 정치는 한쪽 날개가 완전히 부러져 비상(飛翔)이 미심쩍은 초라한 `새` 꼴이 됐다. 허겁지겁 치러야 하는 대선판도는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대통령선거가 부실해질 위험이 한층 더 높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부족한 대통령을 물러 앉힌 다음 또다시 대통령선거를 엉성하게 치르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진보세력 내전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5월 장미(薔薇)대선`은 `적폐 대청소론`과 `국민 대통합론`의 맞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변란을 겪으면서 `적폐청산`과 `대통합`은 온 국민들이 갈망하고 있는 으뜸 주제들이다. 더께로 쌓인 폐해들을 일소하는 일과 갈가리 찢긴 민심을 치유하는 작업은 그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사명이 아니다. 굳이 뉘앙스를 나눠 예측하자면 `적폐 대청소`를 주장하는 쪽은 다소 과격한 인상이고, `국민통합`을 부르짖는 쪽은 세력연대나 권력분산 쪽에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전망된다. 그 목표에 큰 차이가 있지 않다면, 방법론이나 우선순위는 핵심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비극적인 국가불행에 대해 현저한 인식의 간극이 암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결정 이후 묵묵부답으로 국민들의 허망을 보탰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갈등의 방아쇠인 팽목항으로 먼저 달려갔다.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으스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청와대 불법점거”라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면모를 또 한번 과시했다.
대통령 탄핵을 견인해낸 촛불집회는 열광의 `축제`를 연출했다. 태극기를 들고 나섰던 사람들 중에 3명이나 되는 귀한 생명이 희생됐다. 더 이상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통합`과 `치유`는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화합`을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것은 치졸한 악덕이다. 헌재 결정 직후 국회소추위원장인 바른정당 권성동 의원이 밝힌 “누구의 승리도, 누구의 패배도 아니다”라는 소감은 백번 옳다.
현격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용단이 절실하다. 움켜쥐려고 하면 더 빠져나가는 민심의 오묘한 본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순정한 `비움`의 자세로 뭉쳐내야 한다. 당장 판을 뒤집어엎겠다는 섣부른 욕심은 금물이다. 부러진 날개를 하루빨리 고쳐내어 `반대의 일치`라는 순기능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이 나라는 위험하다. 대한민국이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서 지금 가장 필요한 약은 오로지 `진정한 화합`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