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교만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와 평생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교만`이란 말을 누구나 듣기 싫어한다. `교만`이란 무엇인가? 잘난 척하는 것일까? 아니면 거만한 걸음걸이일까? 교만이란, 자신보다 우월하고 위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며 그의 조언에 경청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교만한 사람은 다 망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라고 기록되어 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나오는 `오므리`는 비범한 사람이었다. 엘라왕의 암살 후 3장군의 혼란기를 평정했다. 오랜 기간 북이스라엘을 `오므리의 집`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오므리가 다스리던 12년의 기간 동안, 북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커다란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그 세력은 지중해와 요단 동편까지 확대된 북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오므리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이러한 정치적 업적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호황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외교적으로도 정략 결혼을 통하여 나라를 안정시켰고, 활발한 무역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시기였다. 하지만 구약성경 열왕기서에는 오므리를 악한 왕으로 무섭게 책망하고 있다. 신의 뜻을 무시하고 교만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도 `잘난 사람`이 많다. 이들은 항상 노는 것 같은데 조금 공부해도 장학생이 된다. 조금 운동해도 금메달을 딴다. 조금 일해도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 잘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난 사람의 수준에서 그친 사람은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없다. 이른바 `된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 자신과 주변사람이 힘들게 된다. 잘난 사람은 예리한 칼과 같다. 이에 반해 된 사람은 칼집이다. 칼 자랑하다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 날카로운 칼은 칼집이 없으면 위험하다. 칼집이 없으면 그 날카로운 칼로 주변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벤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사람은 반드시 된 사람이 돼야 한다.
칼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칼집부터 준비하려고 노력하라. 그게 복이다. 칼집을 먼저 마련하면 어떠한 날카로운 칼을 소유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날카로운 칼은 칼집 이후 문제다. 칼집 없이 날카로운 칼을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좋은 차 타고 우울증에 빠진다. 좋은 집에 살면서 무기력증에 빠진다. 많은 월급 받으면서 정신 이상에 걸린다.
올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를 보니 많은 분량이 `자아 실현`(self realization)에 관한 것들이었다. 스티브 잡스, 마윈,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을 모델로 한 것들이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self`(자신), 이것이 문제다. 내가 인생을 만들어 간다라는 생각이다. 그러한 태도는 칼집이 아닌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 가겠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 솔로몬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을 얻었다. 솔로몬 정권 초기에게는 칼집이 있었다. 칼집이 준비되었기에 그는 엄청나게 날카로운 칼을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솔로몬은 칼집을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팽겨쳐 버렸다. 그때부터 솔로몬의 날카로운 칼은 주변의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국가의 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러 급기야 영토의 일부분을 빼앗기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됐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칼집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리고 그 칼집을 간직하자. 그것이 지혜의 왕 솔로몬 보다 더욱 지혜롭게 삶을 살아가는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