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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슬픈 도구가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7-03-03 02:01 게재일 2017-03-0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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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감자 200그램박상순 지음난다 펴냄·시집
실험적이고 낯선 느낌의 시를 주로 써온 박상순(55) 시인이 네 번째 시집`슬픈 감자 200그램`(난다)을 펴냈다.

`러브 아다지오`(2004) 이후 1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해석과 의미화를 거부하는 5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렸다. 한국 시단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독특한 개성과 그만의 리듬으로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한 박상순 시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내 보일 수 있게 완벽하게 세팅된 무대다.

시인은 현실세계의 단면이나 인간의 감정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대신, 오로지 언어로써 쌓아올린 하나의 세계를 감각하라고 권유한다.

일견 그래왔던 것처럼 녹녹하게 읽히는데 그 뒷맛은 녹록치가 않다. 꿈틀대는 말의 뼈마디가 유연하기 그지없는데 그 부드러운 관절들의 춤을 뭐라 제목 짓기 또한 만만치가 않다. 무작정 덮어놓고 좋은데 그 좋음을 도통 설명할 길이 만무하다면 그 좋음은 실로 진실이고 진심이 아닌가.

시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유가 반짝이는데, 시마다 반짝이는 자유 속에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규율이자 규칙이 새로 반짝여서 속도를 내어 걷다가도 이내 멈춰서서 나를 찾게 되니 이처럼 끝도 없이 나, 나라는 자의식을 물고 늘어지는 시집이 또 있겠나 싶은 감탄을 참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언어라는 슬픈 도구가 얼마나 풍요롭게 시의 잔치를 벌일 수 있게 하는지 그 일련의 과정들을 몹시도 아름답게 복작거리는 말과 그 말맛의 다채로움으로 펼쳐보이며 우리를 흥분시킨다.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실인데 또 잘못 알았음. 아뿔싸./ 겨울이 왔음/ 창밖엔 크리스마스트리 반짝이는데, 누가 있겠음?”(`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부분)

시인은 1991년 등단 이후 줄곧 낯설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써왔다.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시들로 2000년대 중반 평단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소위 `미래파`의 토양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세상은 지각이나 감각 또는 인지의 결과와는 다른 것일 수 있고, 나는 그 한계 안에 있다. 허구처럼 보이는 사건들과 이미지로서의 환영을 교차하면서, 미미한 나의, 문제와, 절박하게, 침통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대면하고자 했지만, 더 즉물적으로 그것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어떠한 의미도 배제해야 한다”고 썼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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