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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들의 운명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7-02-28 02:01 게재일 2017-02-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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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와 전쟁까지 벌이면서 나라를 다스리고 싶다는 야망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왕좌`에 올랐던 태종 이방원은 “자식들에게만은 이런 비극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다. 장자 승계의 원칙에 따라 양녕을 세자로 삼았지만 그는 성격 자체가 정치에 맞지 않았다. 호방하고 자유분방한데다가 바람기까지 다분해서 숨막히는 왕좌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왕권의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차남 효령은 불교에 심취해서 일찍 정치와 담을 쌓았고, 서둘러 머리 깎고 절간으로 들어가버렸다. 셋째 충령은 `임금 하기 딱 좋은 캐릭터` 였다.

태종은 3남에게 왕권을 물려주었으니 이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시다. 세자가 결정되면 다른 왕자들은 왕궁을 떠나는 것이 관례였다. 양녕대군은 홀가분하게 이천(利川)으로 가 농사를 지었다. 그때부터 `이천쌀`은 명품으로 이름 높았다. 왕의 맏아들이 손수 지은 벼농사란 프리미엄이 붙은 것. 세종은 맏형을 극진히 섬겼다. 사고를 너무 치는 통에 “처벌하소서” 상소가 빗발쳤어도 왕은 그를 감싸주며 매년 한 차례씩 궁에 불러다가 잔치를 열어주기까지 했다. 세종은 일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54세로 승하하지만 양녕은 69세까지 살았고 중이 된 효령은 속이 편해서 한참을 더 살았다.

김정은의 형 김정남은 양녕대군과 비슷한 성격이었다. 세종은 맏형을 잘 감싸주었지만 김정은은 형을 죽여버렸다. “돌아다니면서 내 욕을 너무 하고 권력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였다. 사람 죽이는 것이 취미인 그로서는 `제거하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백두혈통은 죽이지 말라”는 김일성의 유훈도 깨어졌다. 이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위험하다. 지금 중국이 한솔 가족들을 잘 보호하고 있는데 “영국에선 많이 위험할 수 있다”는 중국의 충고를 받아들여 옥스포드 유학도 포기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심성이 없어서 내연녀가 있는 말레이시아에 들락거리다가 그만 더러운 꼴을 당했다. 북이 자멸의 길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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