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분노`와 `쓰레기통`

등록일 2017-02-28 02:01 게재일 2017-02-28 19면
스크랩버튼
▲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팬덤(fandom)`은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의 fanatic과 `영지(領地) 또는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다.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몰입하여 그 속에 빠져드는 사람을 가리킨다. 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韓流)의 성공비결은 특정 연예인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덤`의 과학적인 조직과 관리운영이다. 한번 양산된 `팬덤`의 아성은 완고하다.

정치권에서도 이 `팬덤` 현상은 지속적으로 발현돼왔다. 스타정치인을 중심으로 `~계`라는 이름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 패거리정치도 일종의 `팬덤정치`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 `팬덤정치`는 순기능을 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나라는 지금 엇나간 `팬덤정치`가 빚어내는 가공할 부작용의 한복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조기대선을 상정해 펼쳐지고 있는 대선 정국은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대구·경북에서 38.0%로 으뜸자리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결과(리얼미터)가 눈에 띈다.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대구·경북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36.1%)이 박정희 전 대통령(31.0%)을 앞섰다는 결과(리서치뷰)도 보인다.

선두권을 굳건히 장식하고 있는 잠룡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다. 최근 두 주자들은 `분노`와 `사랑` 논쟁으로 한바탕 부딪쳤다. 논란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선한 의지`를 인정하는 취지의 안희정 발언에 대해 문재인이 “분노가 빠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안희정은 “지도자의 분노는 피바람을 일으킨다”고 맞대응했다.

문재인은 다시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심 없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겠느냐”고 반문했고, 안희정은 “분노의 실천과 마무리는 사랑”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친문(親文)세력의 집중포화 속에 안희정은 결국 꼬리를 내려 “적절치 못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던 사이에 문재인 캠프 자문단 공동위원장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해괴한 발언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정세현은 언론인터뷰에서 김정남 독살사건과 관련 “비난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라면서 `김대중 납치` `이승만 정적제거`의 역사를 들었다. 그는 독살사건에 대해 “인권문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의문”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안희정과 정세현의 발언 논란은 모두 `말실수`인 것처럼 유야무야 돼가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의 입에서 나온 `분노`라는 단어가 갖는 비상한 의미는 흘려듣기가 어렵다. 분노에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노사모`라는 팬덤그룹을 형성해 성공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문재인의 `분노`는 그의 `대청소론`과 연계돼 불길하다. 정세현의 발언은 더 심각하다. 정세현의 논리는 정확하게 `물귀신 작전`에 닿아있다. 유력 대선주자 캠프의 자문위원장이 `쓰레기통 뒤집어엎는` 비겁한 수법으로 대한민국을 `똥 묻은 놈` 취급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단종(端宗)`의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온다.

`연정(聯政)` 희망을 말하던 안희정이 벼락 맞은 듯 일순간 꺾여가는 모습에서 또 하나의 암운을 본다. 모조리 청산하겠다고 벼르는 지도자가 일으킬 정치보복 광풍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온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김정남 독살` 사건마저도 이단공단(以短攻短)의 허술한 논리로 두둔하는, 소위 통일전문가의 발언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특정 정치인을 딱 정해놓고 무슨 짓을 저질러도 끝까지 지지하는 `팬덤정치`의 만연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 `독재`의 유혹이나 `농단`의 변태로 흐르기 십상인 `팬덤정치`는 분명히 혁신해야 할 대상이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의 이면에 웅크린 저 어둑한 `팬덤`의 망령을 하루빨리 극복해내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안재휘 정치시평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