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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시인, 마침내 삶의 주인이 되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7-02-24 02:01 게재일 2017-02-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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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도종환 지음난다 펴냄·산문집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난다)가 재출간됐다. 같은 제목으로 지난 2008년 출간됐다가 오랜 기간 절판 상태에 놓였던 이 책을 도종환 시인이 몇 년에 걸쳐 하나하나 다듬고 새로이 증보해 근 10년 만에 다시금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2004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시인이 보은 법주리 산방에 머무는 동안 쓴 산문을 엮은 것으로, 자신을 도시라는 이름의 사막에서 구해내 숲속의 청안한 삶으로 되돌려보낸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담아낸 기록의 산실이다.

시인에게 도시는 도처에서 모래바람 같은 것이 몰려와 눈을 뜰 수가 없는 사막 같은 곳이었다. 도시에서 그는 뜻이 있어 세상의 큰일을 도모했으나 원한 바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몸은 온전치 못하고, 마음도 균형을 잃은 채 밥벌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렇게 숲으로 들어갔다. 깊은 산중에 집을 짓고 홀로 텃밭을 일구며 몇 해를 지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사막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떠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모래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벗어나고 싶습니다. 파도치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숲 우거진 그늘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나무 아래 진종일 누워 있고 싶습니다. 먹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나무의 그림자나 비릿한 물 냄새를 덮은 채 누워 잠들고 싶습니다. ”(217~218쪽)

숲에서 시인은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지어 먹었고, 텃밭에 푸성귀를 심어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했으며, 끼니를 세끼에서 두 끼로 줄여야 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다. 겨울에는 짐승들 먹을 시래기와 밤을 내다놓았고, 봄에는 할머니들을 따라다니며 나물 뜯는 걸 배우다 산천이 온통 먹을 것으로만 보일까 두려워했다. 여름에는 아까시나무 꽃, 조팝나무 흰 꽃을 보며 빛깔로 화려하기보다 향기로 진하기를 소망했고, 가을에는 가을바람 한줄기가 마음을 다독이는 걸 알았다.

숲속에서 자연과 동물과 함께 지내는 일상을 통해 시인은 천천히 삶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 기쁨을 느꼈다.

먹을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으면서 낭비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삶의 기쁨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기쁨은 생명의 기쁨이자 고통 속의 기쁨이다. 우주의 일부이자 전체가 되는 기쁨이다.

“그렇습니다. 신체의 욕망에 갇힌 채 새로우면서도 쾌락적인 것, 자극적이면서도 크고 많은 어떤 것을 찾아가다가 만나는 흡족함과 이 기쁨은 다릅니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육신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가는 길과 생명의 길은 다릅니다. 이 기쁨은 고통 속에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고통을 만나 그 고통 속에서 나를 해체하고 다시 태어나면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찬물에 손을 담그며, 땀을 흘려 일을 하며, 험한 길을 걸으며, 내 하루치의 목숨에 대해 뼈저리게 생각하며 내 삶의 주체를 바꿔가는 동안 내게 찾아오는 기쁨입니다. ”(272쪽)

▲ 도종환 시인
▲ 도종환 시인

시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에서도 그대로 행하고자 노력한다. 지난 세월을 보아도, 앞으로 걸어갈 길을 짐작해보아도 그렇다. 따라서 이 책은 철저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고자 하는 한 인간의 간절한 물음이다. 기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문장은 숲에 있던 그가 사막에 있는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절절한 물음을 품고 사는 것은 곧 기도다. 그렇게 기도가 된 물음만이 타인에게로 가 닿는다. “그대가 사막에 있다면 다시 숲으로 오시도록 부르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와 닿는다면,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막에 있는 이들을 영혼의 거처인 청안의 숲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시인 도종환의 초대장이자 기도문이다.

“너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사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싫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살고 싶어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황폐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풍요로워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독한 사람이 되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선하게 변하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309쪽)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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