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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의 계절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7-02-23 02:01 게재일 2017-02-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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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들녘에 눈이 내리면/상냥한 얼굴 동백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뻘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또 한번 동백이 필때까지 날 잊지 말아요” 처연한 목소리로 조영남이 부른 이 노래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내가 죽거든 이 노래를 불러달라”며 후배 가수들에게 부탁했다는 그는 `화투그림`때문에 물의를 일으키다가 지금 모든 활동을 중지한 채 `바람 불고 고달픈 세상`을 등지고 죽은 듯이 숨어 살지만 올해도 동백꽃은 다시 피어난다.

화신(花信)은 남쪽에서 올라온다. 12월에 피는 노란 밀초색 `랍매`에 뒤이어 홍매가 피고 잇따라 백매가 피면서 동백이 함께 피어난다. 흰동백, 얼룩배기동백, 분홍동백도 있지만 진홍색이 주류를 이루고 겹동백 홋동백이 있지만 산뜻한 홋동백이 조상이다. 소금기 섞인 바람을 좋아해서 해안가에 주로 군집을 이루어 자라고 꽃은 시들기 전에 진다 해서 `귀거래사의 꽃`, 혹은 능소화와 함께 `선비꽃`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좋은 계절 다 놓아두고 한겨울에 핀다 해서 소나무, 대나무, 매화와 함께 `겨울의 친구`에 한 몫 낀다. 다른 꽃들은 다들 벌 나비가 돌아다니며 꽃가루받이를 해주지만 동백은 유일하게 `동박새`가 수분(受粉)을 한다. 부리 긴 새가 꽃속에 머리를 밀어넣고 꿀을 빨면 온 몸에 꽃가루가 묻고 다시 다른 꽃으로 가면 암술에 묻는다. 매화는 진한 향기로 벌 나비를 유인하지만 동백은 꿀을 풍부히 준비하고 강력한 붉은 색으로 작은 새들을 부른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은 사춘기를 맞은 소녀의 심리를 정밀히 묘파했는데 여기 나오는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동박새가 찾아오는 꽃`을 동백꽃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기름을 넉넉히 머금은 동백열매는 조선의 여인들과 친했다. 동백기름은 쪽머리 여인들의 머릿기름으로 제격이고, 석유등잔과 달리 동백등잔은 은은한 향기를 품어 대가집 안방마님의 밤벗이었다. 동백향이 누리에 가득하기를….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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