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만주 하얼빈 역에서 침략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께서 남긴 여러 유묵(遺墨) 중 보물 제569-6호는 압권이다. `이로움을 보았을 때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는 목숨을 바치라`는 내용의 이 글귀는 윗물 아랫물 가릴 것 없이 사리사욕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참담한 현실에 준엄한 채찍으로 다가온다.
`잔인한 3월`이 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마치 마주보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두 개의 기관차처럼 위태롭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용돌이가 주말마다 전국 곳곳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혹자들은 `구한말 혼란기 데자뷔(旣視感)`를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제2의 IMF 구제금융` 위기를 입줄에 올린다.
헌법재판소(헌재)는 탄핵소추안에 대한 결정 초읽기에 들어갔다.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정반대의 주장을 담은 초대형 집회들이 거리를 휩쓴다. 입으로는 `판결 존중`을 말하면서도 군중은 마치 제 말대로 결정해주지 않으면 법정이라도 때려 부술 기세다. 유력정치인들의 “다른 결론이 나오면 민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은 교졸한 `협박`이다.
봄은 저만치 올동말동하고 있는데, 헌재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철없는 `러시안 룰렛` 게임에 민심은 점점 더 얼어붙고 있다. 마치 헌재 결정 이후에는 나라가 거덜이 나도 상관없다는 듯한 이판사판 기세다. 이 어리석음의 도가니를 탈출할 묘방은 정녕 없는 것일까. 국회의원들이 `광장정치` 선동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입법부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몰염치한 행태다.
예측불허의 혼돈 속에서 행정부는 납작 엎드려 눈알만 굴리고, 나라꼴이야 뭐가 됐든 정치권은 `권력 더 움켜쥐기`에 미쳐 있다. 기업들은 몸조심 모드에 들어가면서 일자리 사정은 바야흐로 최악으로 치닫는 중이다. 국제사회에서 `KOREA`의 이미지는 한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쳐나자빠지는 서민들을 진심으로 돌아보는 위정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나라를 정말 결딴낼 지도 모를 갈등은 `사드 배치` 찬반 논란이다. 북한의 거듭된 `핵 공갈`에 둔감해진 민심을 비집고, `사드 배치` 반대론자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북한권부를 `핵 포기` 설득이 가능한 집단으로 여기는 그들의 관점은 과연 옳은 것인가. 김정남 독살 사건을 보면서도, 목숨 내걸고 권력자에게 `핵 포기` 용단을 건의할 참모가 북한에 있다고 여전히 믿는 것인가.
역사를 돌이켜보아야 길이 보인다. 인조는 조정 내에서 벌어진 친명(親명나라)-친청(親청나라)파의 우물 안 개구리식 당파싸움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삼전도에서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국치(國恥)를 기록한 비루한 군주가 됐다. 고종은 아버지인 대원군과 왕비 명성황후의 치졸한 권세다툼을 다스리지 못해 망국의 비운을 피하지 못했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이 끝나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면 정치권은 또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을 흩뿌려댈까. 그 무지막지한 포퓰리즘 광풍에 나라꼴은 만신창이가 되고, 마비된 민심은 또다시 엉터리 지도자를 뽑는 것은 아닐까. 아니, `북핵` 대처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국론분열이 끝내 북한의 오판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나라의 참 주인인 국민들이 진실로 중심을 잡아야 할 대목은 한 둘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이면이 까발려지면서 드러난 `이로움을 보았을 때 정의를 생각하는` 지도자가 없는 현실이 슬프다. 국방의 영역인 `사드 배치`를 놓고 권력셈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대선놀음을 보니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는 목숨을 바치려는` 위인 또한 없는 나라 형편이 비통하다. 입춘대앙(立春大殃), `잔인한 봄`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건만, 믿고 기댈만한 기둥 하나 없이 각자도생(各自圖生) 처지에 몰려있는 민초들만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