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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회(斷指會)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7-02-16 02:01 게재일 2017-02-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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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얼마 전 안중근 의사는 동지들과 단지회(斷指會)를 결성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북간도는 간첩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와 밀정이 뒤섞여 있었고 동지가 돈에 팔려 배신자로 돌변했다.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찾아온 청년들 중에서 가짜를 가려내기 위해 김구 선생은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다. 실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혼미`가 당시의 분위기였다. 단지회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제 손가락을 스스로 잘라낼 정도의 결기가 있는 자라면 적어도 배신은 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애국심을 돈독히 하기 위함이었다.

안 의사는 몇몇 동지들과 함께 왼손 무명지 한 마디를 잘랐고 혈서를 썼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흔쾌히 바치겠다는 내용이었다.

안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편지를 보냈다. “항소하는 것은 왜놈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 네 수의(壽衣·염할때 입히는 옷)를 지어 보내니 입고 가거라.…. 다음 세상에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돼 이 세상에 나오거라” 대체로 그런 내용이었다. 안 의사는 31세의 나이에 사형이 선고되니, 그 날이 광복 35년 전 2월 14일이었다. 지금의 사람들은 그 날을 `밸런타인 데이`로 정해 초콜릿을 주고 받으며 즐거워할 줄은 알지만 안 의사 사형선고일이란 것을 아는 젊은이는 드물다.

더 통탄할 일이 또 있다. 인천 부평경찰서가 “STOP! 테러”란 문구가 적힌 포스트에 `손도장`을 그려 넣었는데, 그 손이 바로 `무명지 한 마디가 잘린` 단지회 회원들의 손이었고 안 의사가 감옥에서 쓴 휘호에 낙관(款) 대신 찍은 그 손바닥이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義士)라 부르지만 일제는 “사형을 선고받은`테러리스트`일뿐이다”한다. 그런데 경찰이 테러 예방 포스트에 안 의사의 손도장을 사용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의도`를 추종한 것인가. 아니면 무지의 소치인가. 말썽이 일자 경찰은 `실수`였다며 바로 수거했다. 역사 공부를 제대로 안 한 결과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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