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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물 문화재 1호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7-01-17 02:01 게재일 2017-01-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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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8일 포스코 제1고로에 불이 들어간다. 21시간 후인 6월 9일 오전 7시 30분 쇳물이 터져나온다. 고철이 녹아 쇳물이 돼 흘러나오는 그 역사적 장면을 지켜보던 창설요원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그 순간의 감격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때의 그 역사적 장면들은 사진에 담겨 `대한민국 철강사의 첫 장면`을 장식한다.

그런데 이상한 모습이 하나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박태준 당시 사장의 얼굴만은 굳어 있었다. “기쁨은 잠시, 걱정이 밀려왔다” 박 사장은 후에 이렇게 술회했다.

뤼프케 당시 서독 대통령은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분단국의 운명`을 공유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렇게 조언했다.“서독의 아우토반 같은 고속도로를 먼저 닦으라. 다음 자동차를 만들어라. 그리고 제철소를 지어라” 이 3개의 사업은 연관산업이었고, 서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국내 모든 관리들과 정치가들, 특히 야당들은 죽기살기로 반대했고 외국인들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영일만의 기적`은 이루어졌다. “모든 반대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제 일제히 제철소를 뜯어먹으려 덤빌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막나?” 첫 쇳물이 터지던 날 박태준 사장의 표정은 그래서 어두웠던 것이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의 `종이마패`가 늑대들을 막아주었다.

그 제 1고로가 임무를 다하고 퇴역하게 됐다. 너무 낡아서 경제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 대형화 추세에 밀려 `은퇴` 해야 할 `작은 거인`이다.

그러나 그 `존재감`만은 한국 철강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서울~신의주 간을 달리던 열차가 도라산역 부근에 서 있는데, 포스코가 보존처리 기술을 이용해 더이상 녹슬지 않게 이를 보존하고 있다. 쇳물문화재 제1호도 이와같이 해서 지켜줄 가치가 있다. 역사적 구조물은 관광자원이 된다. `기적의 현장`이고, 산업의 쌀을 처음 수확한 탈곡기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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