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복수불반(覆水不返)

등록일 2017-01-04 02:01 게재일 2017-01-04 19면
스크랩버튼
▲ 이곤영<br /><br />대구취재본부장
▲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

주나라 문왕의 스승인 강태공 여상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돌아보지 않고 책에 파묻혀 살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그의 아내는 친정으로 달아났다. 시간이 흘러 여상이 문왕을 만나 부귀공명을 이루게 되자 아내는 여상을 찾아와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떠났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자 여상은 그릇의 물을 마당에 쏟으며 “저 물을 그릇에 담아보시오”라고 했고, 그의 아내는 물을 그릇에 담으려고 했지만 쏟아진 물을 담을 수는 없었다. 여상은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소. 한 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소”라고 말했다. 고사성어인 복수불반(覆水不返)은 “한 번 엎지른 물은 돌이켜 담을 수 없다”는 말로 일단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 친박계는 복수불반의 진리를 애써 거부하고 있다. 이미 흘러간 물을 되돌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정유년 새해가 밝았으나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탄핵 표결 전까지도 친박은 “대통령은 1원도 챙긴 적이 없는 지도자”,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살아온 지도자”라고 했다. 국회 탄핵과 촛불 민심에도 그들은 대통령의 국정 농단 혐의 자체를 부인했다. 아예 뭐가 잘못이냐며 항변한다.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느닷없이 지난 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계획에도 없던 신년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반박하며 관저에서 자신이 할 것은 다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삼성과의 관련설에 대해서는 헤지펀드에서 보호하려는 순수한 의도였다고 반박했고 최순실과 측근들의 전횡을 국정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또는 누명으로 규정하는 등 변명 일색이었다.

핵심 친박 의원들도 신년에 모임을 가지고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며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탈당요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구시·경북도당 신년교례회에서도 친박 핵심 의원은 “국민들이 이제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반성하겠다”면서 “마지막 1인이 남을 때까지 새누리당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친박 의원은 “탈당할 이유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인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죽어야 보수가 산다. 보수가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새로워질 수 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직책이나 당에서 대표를 포함한 책임 있는 자리에 재직하며 특권을 누렸던 인사, 총선에서 패권적 형태를 보이며 당의 분열을 조장했던 인사, 호가호위하며 상식에 어긋나는 언사를 보였던 인사 등 핵심 친박 탈당을 요구했다.

이에 친박계의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이미 2선 후퇴 의사를 밝혔는데 정치도 안 해본 분이 지역구 다선 의원들에게 이렇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반발했고 친박계 한 핵심 의원도 “당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얘기를 해야지 사람을 먼저 치겠다고 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강하게 성토를 했다.

지역 정서도 친박계의 논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듯 하다. 참으로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사당으로 변질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대구·경북은 “근혜가 뭘 잘못했나?”라며 애써 옹호하는 분위기다. 친박세력이 주류인 새누리당을 탈당한 유승민, 주호영 의원에 대해서는 배신자라며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로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개혁보수신당으로 당적을 옮길 가능성이 높은 국회의원에게 전화 등을 통해 “새누리당을 탈당하면 죽는다!”라며 겁박하고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지난 잃어버린 10년 보다 더욱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 올 것이라는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국가안보와 도덕성의 가치 때문이다. 하지만 최순실과 그 주변 인물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믿음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의리를 지키는 것만이 진정한 보수의 길은 아니다. 흘러간 물을 도로 담을 수는 없다.

데스크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