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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원로시인 삶 오롯이 고순도 詩選 100편 실어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12-30 02:01 게재일 2016-12-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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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사랑하기에…황명걸 지음창비 펴냄
원로 시인 황명걸(81) 시인의 시선집 `저희를 사랑하기에 내가`(창비)가 출간됐다.

황 시인은 1962년 `자유문학`신인상에 `이 봄의 미아(迷兒)`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등장한 이후 사회참여와 현실비판의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로 1960~1970년대 한국 시단을 풍미했다.

시인의 오랜 벗 신경림 시인과 구중서 문학평론가가 첫 시집 `한국의 아이`, 두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 세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서 각 25편씩 가려 뽑은 것을 시인이 일일이 손을 보았고, 여기에 신작시 25편을 더해 모두 100편의 시를 실었다. 지난 54년간의 시적 성취와 시 세계의 변모를 한눈에 살펴보면서 “새삼 시란 무엇이며 시를 읽는 즐거움은 어데서 오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신경림, 추천사)해보게 하는 각별한 의미가 담긴 시집이다.

제1부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가난과 슬픔과 역사와 미래가 응축”(구중서)된 시인의 대표작`한국의 아이`를 비롯해 첫 시집 `한국의 아이`에서 뽑은 시들이 실려 있다. 판금 조치라는 수난을 겪기도 한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불 팔아 며칠/솥 팔아 몇끼/마지막 숟갈 팔아 한끼 연명하고는/지어미가 지새끼를/지아비가 지어미를/제가 제 목숨을 끊어 일가족 집단자살”(`그날 호외는`)하고 마는 암울한 사회와 민족분단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을 드러내는 한편, “신문사가 주인인 호텔엔/까맣게 높이 인부들이 매달려/값싼 임금에 유리창을 닦는”(`서글픈 콘트라스트`) 부조리한 현실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다방에 앉아 금붕어마냥 엽차만 꼴깍꼴깍 마시고/(…)/해 떨어지면 그렇고 그런 패들과 어울려/막걸리잔이나 기울이”(`이럴 수가 없다`)는 도시 소시민의 무기력한 생활을 반성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제2부는 두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에 실린 시들이다. 첫 시집 이후 20년의 침묵 끝에 펴낸 이 시집에서 시인은 동아일보사에서 집단해직된 이후 언론자유화운동 시절의 통렬한 사회비판 의식과 북한강변에서 화랑 까페를 운영하며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만년의 순진무구한 사색의 세계를 담은 시편들을 선보인다.

제3부에 실린 시들은 세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서 가려 뽑았다. 고희를 기념해 내놓은 이 시집에서 시인은 “드문드문 검버섯 피어 있어/얼굴이 더욱 맑고/연륜과 기품이 엿보이는/아름다운 노인/벽오동이나 은백양/또는 자작나무를 닮은/향기나는 사람”(`아름다운 노인`)이 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노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제4부 신작시에서는 연륜의 깊이가 묻어나는 고매한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전작 시집에서 보인 냉철한 현실비판 의식보다는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른 자로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진솔한 시편들이 감동적이다. 어느덧 팔순의 나이를 넘긴 시인은 “매사에, 사사건건, 사안시하며, 악의에 차서/깎아내리고, 욕지거리하며, 핏대를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별종/싸가지 없는 악종, 구제불능의 망종이었다”(`허튼소리`)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젖기도 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자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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