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는`정치는 타이밍`이라는 상식을 명징하게 확인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임 중 테러조직 폭격을 오늘 결정할까, 내일 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오늘 결정해서 해결할 확률이 70%만 돼도 나중에 결정해 확률을 100%로 올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 대통령의 결정은 시간 싸움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정치나 정책도 타이밍을 놓치면 별무소용이다. 그냥 물거품만 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큰 정치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최적의 타이밍 결단에 능했다는 부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타이밍의 귀재였다. 적확한 타이밍 선택으로 군사정변을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경제정책을 적기(適期)에 밀어붙여 산업화 기적을 이끌었다.
민주화 이후 가장 타이밍 감각이 뛰어난 대통령은 단연코 YS(김영삼 전 대통령)다. 절묘한 타이밍에 하나회를 숙청해 대한민국에서 쿠데타의 공포를 제거했다. 엇갈린 주장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해 각종 음성적 거래를 위축시켰다. YS는 `돈과 권력을 동시에 가져선 안 된다`며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부정축재의 고리를 타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타이밍에 관한 한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은 것 같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무딘 스타일은 정치적 성취를 뒷받침하는 뚝심으로 인정됐다. `원칙을 가진 정치인` 이미지가 국민적 지지를 두터이 하는데 일조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원수로서 그런 품성은 거듭 패착을 낳았다. 타이밍을 놓친 정치·정책은 곧바로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시켰다.
지난 2014년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3일 만에 눈물로 사과했다. 절절한 토로였음에도 실기(失期)가 호소력을 깎아먹었다. 지난 4·13총선의 기록적 참패 이후에 내놓은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달랑 두 줄짜리 논평은 국민감정과 한참 동떨어진 멘트였다. 현기환 정무수석을 비롯해 총선 후 즉각적으로 책임지는 인사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은 더 이상했다.
새누리당 친박지도부가 부서진 권좌에서 미적거린 일도 진퇴(進退) 타이밍의 소중함을 모르는 어리석음이었다. 동패 원내대표를 뽑는데 성공한 직후에 곧바로 지도부 사퇴를 결행한,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속보이는 행동`은 국민들의 조소(嘲笑)를 덧냈다. 비박계(非박근혜계)의 집단탈당 선언 이후에야 부랴사랴 인명진 목사를 찾은 일은 또 어떤가.
새누리당이 인명진에게 SOS를 친 일은 집에 불이 나서 한쪽이 무너진 다음에서야 `119` 다이얼을 돌린 해프닝과 다르지 않다. 인명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입바른 소리`의 대가다. 그는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의 이유로 4차례 투옥되었고(YH 사건 등), 한 차례 국외 추방까지 당한 경력을 갖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보수원로다.
날카로운 `쓴 소리`를 앞세워 위기에 처한 보수정당의 `원 포인트 릴리퍼(1점 구원투수)` 역할을 해온 인명진의 활약을 주목한다. 인명진이 뒷북정치, 엇박자정치의 희생양이 될 것인지, 아니면 빈사상태의 보수정당을 기적적으로 살려낼 명의(名醫)가 될 것인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난파선 위에서도, 뒤집어진 배 안에서도 죽어라고 조타기를 놓지 않은 주류 친박계를 어찌할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새누리당 난파의 1차 책임자들을 그냥 두고서 배를 바로잡아 항로를 가눌 길은 없다. 모두들 이번 인명진 목사의 선택에 `왜?`라는 의문을 품는다. 수술이 싫어 동료들을 한사코 내친 친박계(親박근혜계)에 그가 과연 메스를 댈 수 있을까 하는 미심쩍음 때문이다. 새누리당을 향해 `해체해야 할 정당`이라는 독설을 퍼붓다가, 경실련 영구제명의 오욕까지 감수한 그의 표변은 과연 무엇을 겨냥한 것인가. 그것이 정말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