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세온도(歲溫圖)를 그리다

등록일 2016-12-02 02:01 게재일 2016-12-02 18면
스크랩버튼
정 선 호
추사(秋史)가 유배지 탐라에서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을 무렵, 난 필리핀 루손섬에서 세온도를 그렸다 세한도의 소나무 대신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망고나무와 파파야나무 그려넣고 초가 대신 바파이쿠보를 그려넣었다 그가 세찬 바람과 눈 내리는 탐라에서 독한 술을 마실 때 나는 바닷가 카페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추사가 그림의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기개를 바랐으나, 난 열매 맺어 가난한 나라의 사람에게 주는 나무들의 풍요로움을 간히 원했다

추사(秋史)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를 패러디한 재밌고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추사가 정월달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세한도를 그렸다면 시인은 따스한 필리핀 루손섬에서 세온도를 그리면서 맵찬 조선의 겨울바람 대신 열풍이 부는 열대지역에서 민중들의 양식이 되는 열대 열매들의 풍성한 결실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풍요와 행복을 간절히 바라며 세한도의 차가운 바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시대와 영역을 초월해서 민초들의 삶을 생각하는 시인의 인식이 깊고 그윽함을 느낄 수 있는 시다.

<시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만수의 열린 시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