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구단 포항스틸러스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나. 선수들의 유니폼에 새겨진 별 다섯개 명가(名家)의 자존심이 구겨지다 못해 부끄럽다.
포항스틸러스가 창단된 이후 지금과 같은 초라한 성적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필자가 체육부 기자로 출입하던 시절, 포항스틸러스는 항상 상위권에 랭크 돼 있었고 중위권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 황선홍 감독이 맡을 때까지만해도 명문구단으로서의 위치와 자존심을 지켜 왔다. 그런데 올 시즌 최진철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팀 색깔도 없고, 스타급 선수도 없는 그저 그런 하류 팀으로 전락했다.
포항의 팀컬러는 유니폼만큼이나 강렬하다. 용광로를 상징하는 붉은 색깔에 강렬한 검은색 줄무늬는 국내 축구팬 누구나 기억하는 명문구단의 전통 유니폼이다. 포항을 거쳐간 스타급 선수들도 셀 수 없을만큼 많다. 축구 원로인 이회택을 비롯 박성화, 허정무, 최순호, 황선홍, 홍명보, 박태하, 김기동, 이동국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포항 출신이다.
포항을 일컬어 흔히 철강(포스코), 해병대, 과메기 도시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축구도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시민들의 축구열기가 예전 같지 않고 싸늘하게 식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하더라도 1만여 명이 넘는 축구팬들이 스틸야드를 찾아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모습은 이젠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지난달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수원삼성과의 경기때에는 응원석의 포항스포터즈 수가 수원삼성 원정팀 응원단 수보다 더 적어 썰렁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이는 스타급 선수들이 없고, 팀 성적(하위 스플릿 9위로 마감)이 형편없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포항은 지난 2000년 중반 파리아스 감독시절 ACL 우승과 FIFA클럽월드컵 3위 등 화려한 성적을 올리며 명가의 자존심을 한껏 세우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 감독 시절만해도 명가의 명맥은 이어져 왔다.
포항은 당초 K리그 클래식에서 상위권을 기대했으나 그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전북현대와 함께 2010년대 K리그 최고의 팀으로 군림해 왔던 포항스틸러스가 올 시즌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무너진 것은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연패를 당하는가 하면 최하위인 수원FC에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어쩌면 하위 스플릿 9위로 시즌을 마감한 것도 그나마 다행스럽다. 마지막 경기에서 성남에 패했더라면 강등권 리그를 치러야하는 수모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포항이 이 같은 성적표를 내게 된 원인이 모기업 포스코의 예산 삭감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모기업 포스코는 연간 포항구단에 85억~90억원 정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선수 한 명 몸값도 안되는 금액이다. 글로벌 철강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스코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초창기 150억원 이상을 지원하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명문구단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최순호 감독이 다시 왔다. 그 역시 지금과 같은 투자규모로는 명가재건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모기업 포스코에 과감한 투자를 주문하고 있는 이유다. 결국 과감한 투자는 곧 팀 성적으로 이어진다. 올 시즌 우승을 차지한 서울과 준우승 전북 현대의 결과로도 이미 입증된 게 아닌가.
평소 축구를 좋아했던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지금 포항스틸러스의 초라한 성적표를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축구명가에 쏟았던 열정과 애정을 지금의 경영진들도 좀 헤아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구겨진 `축구도시 포항`의 자존심을 되찾아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