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령군은 끊임 없이 민비를 부추겨`정치가`로 만들어간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은 치열했다. 미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이 밀려오고, 대원군은 “우리가 지금 개방하면, 한 방에 훅 간다”면서 쇄국을 했고 민비는 정치 일선에 나가 개방을 주도한다.`얌전한 내조자`가 `국제정치의 핵심`이 돼 시아버지 대원군과 맞선다. 진령군이 `비선실세`였다. 이 무당은 수시로 궁궐을 드나들었고 민비는 그를 완전히 신뢰하고 의존했다. 민비는 심지어 이 무당의 말을 듣고 친정 부친의 묘소를 5번이나 이장했다. 그러나 민중전은 5번째 이장한 이듬해 일본 낭인들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시신이 `입에 못 담을 능욕`을 당한다.
고려 공민왕은 승려 신돈을 개혁정치에 이용하고 버린다. 무릇 개혁이란` 기득권 세력 척결`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래서 신돈은 갖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는 개혁 6년만에 참살을 당하고 `요승 신돈`이란 이름이 역사책에 기록된다. 심지어 “공민왕의 아들이냐, 신돈의 아들이냐”란 의혹까지 제기한다. 당시 주자학을 배운 신진 사대부들이 불교를 공격해 궁지로 몰아넣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신돈이었다. 결국 불교 국가 고려는 유교 국가 조선으로 역성혁명을 하게 된다.
최태민·최순실 일가는 불교의 연기설에 의하면, 신돈이나 진령군의 환생이라 할 수 있겠다. 박근혜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란 개혁정치는 많은 적(敵)을 만들었다. 역사가 지금의 이 사태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