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붙였으니/석양을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원천석은 한때 이방원의 스승이었으나 그가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는 것을 보고는 원주 치악산 깊숙이 숨어버렸다. 태종은 왕사(王師) 자리를 비워놓고 치악산까지 스승을 모시러 왔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훗날 개성 만월대를 돌아보며 `권력의 허망함`을 시조에 담았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정몽주와 정도전의 스승이었던 이색은 두 제자가 친원파·친명파로 갈라져서 목숨 걸고 싸우는 꼴을 보고 “내가 이러려고 저들의 선생이 되었나, 괴롭고 참담한 마음 가눌 길 없다”며 고향 영해로 돌아와 은거했다. 선생도 훗날 만월대를 돌아보며 그 감회를 이렇게 읊었다. 일제 강점기 영천 출신의 왕평이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했던 그 심정은 옛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이 설상가상으로 `최순실 게이트`까지 맞아 서리 맞은 뱀처럼 비실거리면서 황성옛터가 돼버렸다. 비박들은 “당을 이 꼴로 만든 친박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대표직 등 모든 당직을 사임, 당을 새롭게 꾸려가자”하고 친박의 좌장 이정현 대표는“물러나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누군가는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했다. 그러나 대선주자 5명이 `당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고 정진석 원내대표까지 사퇴 촉구 대열에 끼었으며 강석호 최고위원은 처음으로 사퇴를 결행했다.
하태경 의원은 `독한 말`까지 했다.“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가 계속 버티면 4·19때의 이승만 대통령, 이기붕 부통령 일가처럼 될 것”이라 했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쫓겨갔고, 이기붕 일가는 권총으로 집단 자살을 했다. `만월대의 회포`보다 훨씬 참담한 `권력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