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를 접하는 순간 고려 공민왕 시절 신돈(辛旽)과 러시아 괴승으로 악명 높은 라스푸틴(Rasputin)이 떠올랐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이 두 사람을 빗대 최순실 게이트를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또 지난 2009년 12월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이라는 여인까지 생각이 났다.
이는 이들 모두 요상한 술수로 정치권에 등장한 뒤 이를 등에 업고 한 나라의 국정을 철두철미하게 농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시 돌고 도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고려 공민왕의 왕비 노국공주가 결혼한 지 13년 만에 아이를 가졌지만, 난산 끝에 사망하자 왕은 정사를 거의 살피지 않을 정도로 슬픔에 빠져 있었다.
이때 신돈은 노국공주의 혼을 불러내 공민왕을 위로하면서 신임을 얻었고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여하면서 초기에는 공민왕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부패한 사회제도를 개혁하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신돈은 점차 돈과 여자를 요구하는 주문이 늘어나는 등 자기관리에 소홀했고 당시 척결대상이던 권문세가들에 빌미를 제공해 결국에는 역모 모함으로 요승이라는 불명예를 얻고 끝을 맺었다.
공민왕과 신돈이 사망하고 난 뒤 민심이 떠난 고려 왕조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신라시대 미실은 1989년에 출현한 `화랑세기(花郞世紀)` 필사본에 전하는 신라시대 진흥제~진평제의 여인으로 신라왕실과 화랑제도의 원화들을 두루 휘하에 두고 임금 이상으로 신라의 권력을 장악했다.
미실의 경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하지 않고 화랑세기 필사본에만 등장해 역사학계에서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인물이다.
역사적 가치를 떠나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미실은 진흥제~진평제에 이르는 시기를 좌지우지한 신라의 여걸로 그려지고 있다.
신라의 왕위계승권에 있는 성골 남자는 물론이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들과 교제한 자유분방한 여자로서 `여성`이라는 점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 신라사회를 뒤흔들었다.
심지어 진지왕을 과감히 폐위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미실과 여왕자리를 놓고 경쟁한 덕만공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으로 등극하면서 어릴때부터 보아온 미실의 국정농단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여왕이라는 대내외적인 어려움 속에도 뚜렷한 외교와 안보관으로 당과의 관계를 대립이 아닌 우호적으로 유지했고 김춘추가 후에 나당동맹을 맺을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신라를 사회와 문화적으로 안정시켜 국력을 키워 태종무열왕과 김유신, 문무왕이 삼국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밑거름을 만들었다.
지난 2009년 12월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만 하더라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은 덕만공주에 비유될 정도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예견한 드라마로도 회자되는 등 화제가 됐다.
당시 야당 측은 선덕여왕 드라마가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려는 불손한 의도를 지니고 제작됐다는 볼멘소리를 쏟을 정도였고 대선 후 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선덕여왕의 치세를 그대로 닮기 바라는 국민이 상당수에 달할 정도로 드라마의 영향력은 컸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통일 대박론을 발표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하나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하는 등 선덕여왕 정치를 닮아간다는 기대도 얻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발발한 현재, 선덕여왕의 모습을 연상케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순실과 미실만 남은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