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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정치인연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11-08 02:01 게재일 2016-11-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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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성종대왕 시절, 한 내시가 고향에 다니러 갔다. 왕의 최측근이라 그가 지나는 길목 고을 원들의 대접이 융숭했다. 그러나 고향 마을 사또는 “환관과 사사로이 친교를 맺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의례적 문안인사만 하자 내시가 앙심을 품었다. 그는 왕에게 “고향 수령이 크게 대접했습니다” 거짓을 아뢰었다. 왕은 이를 괘씸히 여겨 그 지방관의 승진을 막아버렸다. 어느날 경연자리에서 왕이 내시 고향 수령의 이야기를 했는데 대신(大臣)이 듣고 사실을 조사해 본 결과 내시가 거꾸로 말했음을 알고 이를 왕에게 고했다. `왕을 기만한 죄`로 그 내시는 처형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2006년 청와대가 그를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했을 때 당시 한나라당은 극렬히 반대했고, 그는 13일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때 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교육까지 거덜낼 작정이냐. 장담컨데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 했고, 인사청문회 때는 그의 두 딸의 입학·전학에 문제 있다고 했고, 논문 표절의혹까지 제기했다. 노 정부가 부총리 임명을 강행하자 한나라당은 그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 후보자가 사퇴하자 노 정부는 그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앉혔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종합부동산세 등을 이끌며 한나라당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하지만 정치인연은 참 묘하다. 새누리당이 그를 총리로 지명하자 이번에는 야당이 반대한다. 대야(大野)가 반대하면 국회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다. “야당의 사전 결재를 받지 않았다”가 이유. 야당이 정권을 사실상 이양받은 모양새를 취한다. 한나라당 시절에 죽기살기로 반대했던 새누리당은 이제 입장이 전혀 달라져서 `김병준 옹호`를 해야 할 형편이다.

매우 난감해진 곳이 국민의당이다. 김 교수를 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정치세계에는 친구와 적이 수시로 바뀐다. 한심하고도 재미 있는 정치권의 인연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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