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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렇게 인재 등용하라

등록일 2016-11-07 02:01 게재일 2016-11-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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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찬김천대 교수
기원전 이스라엘 역사에 요셉이란 유명한 인물이 있다. 그에겐 `꿈 꾸는 자`라는 별명이 있었다. 요셉은 그 꿈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또 한번 그 꿈 때문에 이집트 국왕, 파라오 앞에 서게 된다. 요셉은 파라오가 꾼 꿈을 정확하게 해석하였고, 꿈속에 숨겨진 신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파라오에게 풀어주었다. 요셉의 탁월함을 한눈에 알아 챈 파라오는 그 즉시 요셉을 이집트 총리로 임명한다. 파격 인사다. 요셉의 총리 등용에 대해 주변의 엄청난 시기 질투, 그리고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엄청난 모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총리직을 즐기거나 권력에 도취되지 않았다. 사심을 버리고 총리직에 집중했다. 그러한 요셉의 총리직 수행 자세 덕분에 이집트는 극심한 7년의 흉년을 거뜬히 이겨냈다. 비참한 노예 신분으로 이집트에 팔려왔던 이방인 요셉을 파라오가 파격적으로 등용함으로써 이집트는 주변 국가가 결코 넘볼 수 없는 부국강병을 이루게 된다.

이스라엘에는 요셉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란 총리도 있었다. 특히 다니엘은 4번의 왕조(느브갓네살왕, 벨사살왕, 다리오왕, 고레스왕)가 바뀌는 동안 꾸준히 총리직을 수행했다.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이 피지배 계층이었으니, 달리 말하자면, 일제 36년 식민지 시절에 한국인이 일본 제국주의 정부에서 총리를 한 것과 같은 경우다. 이 또한 파격인사다. 다니엘은 자신의 3번째 군주 다리오 왕 시절, 다른 각료들의 시기와 질투, 거짓 모함으로 인해 굶주린 사자굴에 던져지는 끔찍한 일을 겪게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사자굴에서 털 끝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오히려 다니엘을 모함했던 다른 각료들이 사자굴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훗날 다니엘이 4번째로 섬겼던 고레스왕은 갑자기 이스라엘 식민통치를 종식하고 해방시킨다. 이 또한 고레스왕을 총리로서 보필했던 충신 다니엘의 영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원인이 무엇인가? 결국은 사람 문제다. 일은 사람이 한다. 힘을 가진자는 필요한 인재를 등용해 요직을 맡길 때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사회가 납득하는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거부한다. 그러다보니, 불합리와 불법이란 거센 물결과 역류가 발생된다. 바로 옆에 누군가가 법을 어겨 구치소로 들어가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모른체 한다. 법망에 걸려 들어간 저 사람은 재수가 없는 것이고, 자신은 재수가 충만하다고 믿는다. 내 목표,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불의와 어깨동무를 한다. 악마와의 혈맹도 주저하지 않는다. 권력자의 주변 요직에 이런 심각한 인물들이 포진이 되어 있다면 국가 운영 프로그램에 혁신과 개혁이란 있을 수 없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기득권을 위한 행정이 난무할 뿐이며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해 질 뿐이다. 최소한의 소통을 꿈꾸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다.

국가 인재 등용 시스템이 변질적으로 운영되는 건 심각한 문제이다.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인사 시스템은 국민들에게 박탈감과 분노를 일으킨다. 이젠 파격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돼야 한다. 얼마든지 측근으로부터 원망의 목소리 듣기를 각오하고 파격적 인재 등용 시스템을 쇄신해야 한다. 인재 등용의 기준은, 결코 자기 개인의 만족을 충족해 줄 사람을 찾아선 안 된다. 비전을 지닌, 사심 없는 우수한 재목을 발굴해야 한다. 예수가 제자를 선발할 때, “함께 사람을 낚자”라 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권력 공유가 아닌, 비전을 함께 공유하자는 것 이었다. 인재 영입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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