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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전환적 사유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11-04 02:01 게재일 2016-11-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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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철학 박병원 지음 판미동 펴냄·자기관리

사람은 평생동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지친다.

`일철학`(판미동)은 이처럼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란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기술이나 처세의 측면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 박병원씨는 그 실마리를 서양의 철학이나 이론이 아닌, `중론`을 비롯한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일이란 단순히 잡(job)이나 `워크`(work)가 아닌, 세상 속에서 사람이 임하는 일종의 액션(action)”이라고 규정하고, “일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좌표이자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모두가 다 즐기며 피안에 이르는 뗏목”이라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 앞으로의 인간의 일은 무엇이고 그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자각하고, 그에 맞는 자세를 갖추기 위한 실질적 기준을 제시한다.

30년 가까이 다양한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며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쌓아 온 `현장(現場) 철학자`인 저자의 날카로운 문제제기, 묵직한 철학적 사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이 담겼다.

특히 직업적 의식이나 경제적 가치로 국한되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역사적 관계 맺기로서의 일`에 주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과 세상을 잇는 다리로서,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임을 밝히고, `일자리 창출`보다 시급한 것은`일의 본래 가치 회복`임을 천명하며, 일을 일답게 정립해 사회역사적 건강성을 담아 낼 수 있는 새로운 공론의 장을 함께 고민해 나간다.

취업활동이나 효율적인 일의 기술, 직장에서의 처세 등에 매몰돼 정작 내가 지금 하고 있는`일`자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일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며 좀 더 인간다운 삶으로 이끄는 성찰과 변화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저자 박병원씨는 이 책에서 “일의 속성은 사람의 존재속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속성도 아닌, 존재와 세계가 소통하는 그 원리를 대변하는 현상적 표상”이라고 말하며, 사람과 세상을 잇는 매개 개념으로서 일의 영역을 정의한다. 이는 철학 일반에서 쓰이는, 무가치한 요소들까지 포괄적으로 포함되는`행위(行爲)`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여기서 `일`이란 사람과 세상 모두에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하는 통로가 될 때에만 성립된다. 개인의 행위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즉 개인의 욕구가 사회적 합리로 결합되고 승화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보편타당한 행위가 `일`이며, 궁극적으로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하고, `사회성`을 획득하며, `역사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일다워진다는 것이다.

1부 `고(苦)- 세상의 고통`에서는 저성장, 일자리 대란, 신계급사회, 관료의식 등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사회적 현실의 고통을 진단하고, 2부 `집(集) - 고통의 뿌리`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관계의 상실(무명)·기준의 상실(애욕)·목적의 상실(집착)` 등 개인의 고통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낱낱이 해부한다. 3부 `멸(滅) - 일철학 선언`에서는 관계를 관계답게(무잉여 선언), 가치를 가치답게(타당성 선언), 존재를 존재답게(투명성 선언) 복원하자고 선언하고, 4부 `도(道)-시절의 물결`에서는 기존의`직업적 인간`을 넘어서는 `일이있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 유형이 미래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등장할 것을 예견하며, 앞으로 지향해야 할 구체적인 대안으로 공공, 품류, 체계화 등을 제시한다.

저자는 기성의 관습적 조직 생리, 직업적 행태에서 벗어나 개인 스스로 사람과 세상과 일을 근본적으로 재사유하고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함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나아가 사고와 인지 능력을 기반으로 나 자신에서부터 모든 행위를 출발하는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저물고, 앞으로 사회역사적 건강성을 지닌 `일이 있는 인간`의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전망한다. 기능, 스펙, 직무를 중요하게 다루던 과거의 낡은 집단성에 속한 `직업적 인간`을 넘어 이전 조직 사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성숙된 개별자들, 즉 `일이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집단성(체계화)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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