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고은 지음창비 펴냄·시집
“구글 알파고에게 없는 것/그것이 나에게 있다//슬픔 그리고 마음//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뉘우친다/내 슬픔은 얼마나 슬픔인가/내 마음은/얼마나 몹쓸 마음 아닌가//등불을 껐다”
(고은 시 `최근` 전문)
`한국이 낳은 세계적 시인`이라는 호칭 그대로 한국문학의 한 봉우리를 넘어 명실공히 세계 시단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고은(83) 시인의 신작 시집`초혼`(창비)이 출간됐다
`무제 시편`이후 3년 만에 내놓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때`와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자무(自歌自舞)`의 분방한 시정신으로 우주와 소통하는 대자유의 세계를 펼친다. 이 시집은 한마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 인간 존재와 인생에 대한 심오한 예지가 돌올한 “불멸의 시학의 완성”(조재룡, 해설)이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끊임없는 탐구와 모색과 고뇌가 깃든 뜨거운 심장을 간직한 채 역사와 시대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어둠속에서 미지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에게 또 한번 감탄할 따름이다. 제1부에 102편의 시와 제2부에 미발표시`초혼`을 실었다.
“인류 각위 그대들이 끝내 지켜야 할 것/아래와 같다//내 발가락부터/내 손가락부터 이미 특수성일 것//내 별 볼일 없는 얼굴로 하여금/그 누구의 보편성 아닐 것//태풍 뒤 무지개이거나/태풍 뒤 무지개 없거나/오늘이/내일의 보편성 아닐 것”(`유언에 대하여` 전문)
시인은 특정한 날, 특정한 곳을 노래하지 않는다. “어느날/어느 곳/어느 넋이 와 말하”(`하늘 높이 오르는 노래들`)듯,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어느날`이 시 쓰는 날이고,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어느 곳`이 시 쓰는 곳이다. 또한 시인은 특정한 화자의 발화에 기대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개인은 개별적인 단독자가 아니라 우주의 일부이자 전부인 “입자이자 파동”(`내 조상`)으로서 역사와 사회를 감당하는 공동체적이고 특수한 개인이다. 시인은 “온 길도/갈 길도 다 새로 태어나”(`신발 한 켤레`)리니 “미래여 옛날이여 여기 오라”(`나의 행복`)고 말한다. 삶과 죽음, 여기와 저기,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넘어선 곳, “다른 곳을 모르는 곳”과 “다른 곳이 모르는 곳”(`두만강 어귀에서`)에 이르러 시인은 “비유가 아니시기를/비유가 싸가지없는 사기로 되는/서글픈 밤들이 아니시기를”(`손님`) 바라는 마음으로 미지의 행복을 추구해나간다.
제2부의 `장편 굿시` `초혼`은 원고지 130매 분량(63쪽)에 달하는 회심의 역작이다. 김소월의 시를 차용한 시에서 시인은 갑오농민전쟁부터 6·25 전쟁, 광주항쟁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침몰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혼령을 불러내 어루만지고 있다.
“나 돌아가지 않으리라/나 하늘로/나 도솔천/나 용궁 심청/나 천제의 하늘/나 환인의 하늘/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나 소월의 초혼 신 내려/이 고려강토/이 고려산천 도처마다 떠돌며/신방울 울려/신북 치며/신피리 불며/내 비록 맺힌 소리나마/이 소리로 소리제사 소리공양 내내 올리며/이 땅의 반만년 원혼 혼령 위무하며/살아가고저”(`초혼`부분)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