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호
벽에 기댄 채 기다림에 지친 피아노 한 대가 서 있다
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위태로운 모습,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리 하나가 없다 공터는 언제고 불구의 공간이다
입주를 거부당한
저 오래된 몸에서 통증이 피어난다
언젠가는 모두가 겪어야 할 상처의 유물
우리는 버려질 때
또는 잊혀질 때
바람의 음표, 그 건반 위에 있는 대본을 읽는다
윙윙 폐허의 몸을 핥는
바람은 공터를 무대로 재생의
리허설을 준비 중이다
공터는 소외와 유기의 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일반적 인식에서 비켜서 있다. 입주하는 새 집에 들여놓기에 힘든 불구의 피아노, 공터에 버려져 쓸모없어 보이는 그 피아노에도 바람의 음표가 흘러나오고, 그 폐허의 몸은 재생을 위한 준비에 바쁘다는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우리 또한 언젠가는 불구의 공간으로 공터에 덩그러니 남겨질 인생이기 때문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