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응 인
곰팡이 슬어 심지도 못하고
밭둑에다 내버렸는데
버려진 고놈들이 대를 밀어올려
연둣빛 보드란 잎을 펼치고
노랗고 순한 꽃을 보이더니
손가락보다 긴 꼬투리
조롱조롱내 달았다
주전자에 물 올려
차를 끓인다
내다 버린 것들이 돌아와
버린 자의 눈을 맑혀주는 밤
나는 얼마나 더 남루해져야
버린 것들의 맑은 눈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나로 돌아와
결명(決明)에 이를까
버린 것들,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서 밀어내버린 것들이 착하고 고운 생명으로 되살아나 아름다운 무늬와 시간으로 다가옴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다가가 말을 건네고 손을 건네고 있음을 본다. 어쩌면 우리는 채우고 높아지고 더 가지는데 가치를 두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시인은 더 나를 비워내고 낮아지고 보잘 것 없어질 때에 비로소 세상과 우주와 소통하며 마음의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