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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그 넓은 품을 내어주신 어머니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10-14 02:01 게재일 2016-10-1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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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꽃 엄마 한승원 지음 문학동네 펴냄·장편소설

산수(傘壽·여든살)의 나이를 눈앞에 둔 소설가 한승원(78)씨는 지난 5월 영국의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씨의 아버지로 올 들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문학의 거장이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김동리에게 문학을 배웠다. 1966년 단편 `가증스런 바다`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목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작품 `가증스런 바다`를 기준으로 따지면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그는 30여 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 6권의 시집과 10여 권의 산문집을 내며 쉼 없이 창작열을 불태웠다. 고향인 장흥을 중심으로 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끈질기게 추적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닌 한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자들만이 남길 수 있는 위대한 발자취임을 증명하는 데 천착해왔다. 특히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임권택 감독의 동명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그가 지난 12일 펴낸 또 한 권의 장편소설 `달개비꽃 엄마`(문학동네)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2년 전 돌아가신 고(故) 박점옹 여사를 강인한 생명력과 다산성의 `달개비 풀꽃`으로 비유했다.

반세기 가까이 자신만의 소설 영토를 확고하게 구축해오며 한국문단에서 의미있는 위치를 지키고 있는 작가의 오랜 집념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오롯이 그려낸 이 소설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십일 남매를 온전히 키워내는 일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그것조차 시대의 저항에 막혀 버거워했던 어머니의 삶을 절절하고 생명력 있는 언어들로 담아냈다.

“오냐, 오냐, 니 쓰라린 속, 이 어메가 다 안다, 내가 다 안다.

울어야 풀리겄으면 얼마든지 실컷 울어버려라.”

섬 처녀인 점옹은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다부진 성격으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줄곧 “우리 일등짜리”란 말을 듣는다. 특히 여성들이 교육받을 기회가 몹시 적었던 당시로서는 드물게 학교에 다니며, 학생들을 대표해 학교를 홍보하는 연설까지 할 정도로 당찬 인물이다. 게다가 재취 자리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선생이자 `아담`같은 숙명의 상대인 한웅기와 결혼한다. 그 사이에서 십일 남매를 낳지만 그들의 삶은 점옹처럼 당차거나 다부진 것이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둘째 아들인 승원만이 “우리 집안의 기둥”이 돼 형제들을 건사해가며 삶을 꾸려간다. 승원의 삶 역시 소설을 발표해 받는 쥐꼬리만한 원고료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버는 박봉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하늘 저울`이 돼 승원을 지켜낸다.

▲ 소설가 한승원
▲ 소설가 한승원

작가 자신이 동명의 등장인물로 분한 이 소설은 어머니에 대한 `깊이 읽기`인 동시에 한씨 자신의 삶과 문학 인생을 반추하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소설쓰기에 매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학생들을 가르치고, 형제들을 훌륭하게 건사해내며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소설` 때문이었다. 한승원은 지난해 출간한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열심히 쓴 결과다. 동생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는 걸 소설 쓰면서 다 해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소설이란 삶의 동아줄을 굳게 붙잡게 해준 구원 같은 존재가 바로 어머니였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처자식과 동생들에게는 보일 수 없었던 깊고 고단한 울음도 어머니의 품안에서만큼은 마음껏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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