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허수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시집
시인 허수경(52)은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 왔다. 그녀의 여섯번째 시집`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는 2011년에 나온`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 아주 오래전,“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보게도 되는, 산문도 소설도 아닌 다시 시집으로 만나는, 마디마디 가뭇없이 사라지기 전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먹먹하기만 한 시 62편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
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
마침내 터미널에서
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우동 국물을 넘겼다
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부분
이방인의 운명을 타지에서의 실존의 삶으로 이어가는 시인에게 모국어만큼이나 절실하고 그래서 의지하게 되는 것이 모국의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의 유가족들, 정권의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 하루하루 알바를 전전하며 불안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보호는커녕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불순 세력`으로 전락하고 고국 안에서 또 다른`이방인`으로 내몰리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충격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이국의 거리에 선 그가 눈앞에서 목도하는 풍경, 전쟁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중부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과 그들 앞에 국경의 빗장을 내건 유럽국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속을 걸어가는 시인이 살아남은 우리만이라도 쉬지 않고 `기별의 기척`을 건네자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희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