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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화가와 소설가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10-12 02:01 게재일 2016-10-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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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벽(47)씨는 북한에서 정치선동 포스터를 그렸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굶어 죽고, 아버지는 함께 두만강을 건너다가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다. 송씨는 붙잡혀 수용소로 끌려갔다. 체중이 30㎏으로 줄어 뼈만 앙상한 산송장이 되자, “시체 치우기 귀찮으니 나가 죽어라”며 석방했다. “반드시 살아서 보복하리라” 2개월 후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는 2차 탈북을 감행했다. 33세에 한국에 온 그는 횟집 구두닦이, 이삿짐센터와 공사장 인부 등을 전전하다가, 2004년 공주사범대 미술학과와 홍익대 대학원까지 마쳤다.

김정은이 두 손에 핵폭탄과 미사일을 들고 있는 장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김정은의 머리 정수리를 찍어 누르는 그림, “가는 길이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살기 좋은 내 나라” 같은 정치구호와 함께 꽃제비, 수용소 등 북한의 실상을 그렸다. `구호와 현실`이 전혀 다른 북한의 실상을 그린 것.

그의 풍자그림은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의 관심을 끌었고, 2012년 애틀란타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5번째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지난달에는 유엔 본부의 초청을 받았다.

“인간의 존엄성,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사는 북한 주민에게 등불이 되고 싶다” “배부른 행복감, 매일 아침 더운 물로 샤워하고 일터로 나가는 자유를 북한 주민과 같이 누릴 날을 기다린다” 그의 한 맺힌 소망이다.

최근 소설 `비운의 남자 장성택`을 펴낸 탈북 작가 장해성(71)씨는 북에서`잘 나가는 신분`이었다. 20년간 조선중앙TV 기자 겸 작가로 살았다. 할아버지가 항일운동을 한 집안이라 `최고의 출신성분`이었다.

그는 장성택과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내며 교분을 쌓았고,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장씨는 `말 반동`에 걸렸다. 6·25가 남침이란 것, 김정일 출생지가 백두산이 아니란 것 등을 친구에게 환담 삼아 이야기한 것이 밀고되는 바람에 1996년 탈북했다.

그는 지금 `망명 북한 펜센터` 명예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미리 온 통일`이란 말에 값할 활동을 하고 있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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