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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등록일 2016-10-12 02:01 게재일 2016-10-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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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는`국민 의사`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여섯 발의 총탄을 맞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일로 유명해졌다. 그의 이야기는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웅적 면모가 담긴 여러 일화들을 들은 바 있지만 그를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는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주에 두 편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시 창작 수업에서 대학생들에게 틀어주었다. 식사 초대를 받은 지인의 집에서도 보여주었다.

중증외상이란 응급실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심각한 외상을 뜻한다. 대부분 교통사고, 산업재해, 낙상, 자해 등으로 발생된다. 빠른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는 장기 손상과 과다 출혈, 쇼크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초기 대응 시간이 골든타임이다. 이국종 교수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헬기에 오르고, 때로는 줄을 타고 공중에서 내리기도 한다. 지금껏 그를 거쳐 간 중증외상환자만 해도 2천명이 넘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 간신히 걸친 채 한 호흡으로 삶을, 한 침묵으로 죽음을 부르는 응급환자들을 매일 돌봐온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환자 보호자에게 건네는 한마디 말이다. 이국종 교수는 응급수술을 앞두고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피투성이 주검이나 다름없는 자식을 보며 혼절 직전인 부모를 향해 `온몸이 다 으스러졌다. 너무 많이 다쳤다. 그래도 제가 최선을 다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약속한다.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 한다. 그가 어떻게 최선을 다하는지는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글은 그 처절함의 한 조각도 옮길 수 없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슴이 무겁게 주저앉고 온몸이 떨린다. 입버릇처럼 해오던 말이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시간에게, 너무 많은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주 최선을 약속했는지 모른다. 일주일 다이어트 운동하면서도, 낚시 가서 물고기 잡으면서도, 양은냄비에 라면 하나 끓이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떠들었다. 글 쓰는 데, 공부하는 데, 하루 먹고 사는 데 한 번도 최선을 다한 적 없으면서 그만큼이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타인을 속이고, 삶을 속였다. 부끄럽다. 그래서 입을 닫기로 한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정말 그럴 수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다. 모든 능력과 경험, 육체, 정신, 절실함을 다 쏟아 부을 수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다.

`다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것이 끝나거나 남아 있지 아니하다`이다. 수술한 환자가 결국 사망하자 이국종 교수는 유가족에게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게 전부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지 않는다. 이미 다한 최선을 다시 끌어다 쓰지 않는다. 나는 `죄송하다`가 모든 걸 쏟아 부어 죽을힘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겨우 하는 말이란 걸 또 알았다. 나에겐 그저 잠깐의 부담이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수없이 남발해온 말일 뿐이다. `최선을 다하다`와 `죄송하다` 사이에서 내 삶은 자주 교활했다. 비닐풍선처럼 가짜 약속과 거짓 사과로 부풀기만 했다.

나처럼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과 `죄송하다`는 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이다. 이국종 교수와 팀원들의 헌신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턱없이 부족했던 중증외상치료기관이 조금씩 확대되는 가운데, 지난 6월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개소식이 열렸다. 테이프 커팅과 기념촬영 순서에서 센터장인 이국종 교수는 저쪽 귀퉁이에 밀려나 있었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못해 결국 사진에서 잘렸다. 도지사, 부지사, 국회의원, 도의회 의장, 시의원 등 최선을 다해 눈도장 찍고 공적 부풀려 질기게 연명해온 사람들만 우글우글 했다. 그게 그 사람들의 최선이다. 이국종 교수는 금방 자리를 떠 다시 죽음과 싸우러 갔다. 한 사람을 알려면 그의 최선이 어느 곳에 머무는 지를 보면 된다. 내 최선은 어딜 향하고 있을까. 당신의 최선은 지금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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