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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부조리·삶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사유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10-07 02:01 게재일 2016-10-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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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지음 창비 펴냄·시집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온 뒤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이근화 시인의 네번째 시집`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창비)가 출간됐다.

2000년대 시단을 뜨겁게 달궜던 `미래파 시인` 중의 한사람으로서 주목받았던 시인은 여러차례의 수상 경력에서 드러나듯이 한국 시단을 이끄는 젊은 시인으로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면서, 활달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언어가 어우러진 단정한 묘사와 사유가 돋보이는 시 세계를 견고하게 다져왔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감정이 절제된 차분하고 담백한 어조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섬세한 관찰력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욕망과 갈등이 들끓는 고단한 일상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부조리함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냉철하게 응시하면서 “무감각하기만 한 일상의 시간”과 “나날의 삶이 기실 얼마나 메마르고 외롭고 위태로운 것인가를 알려주는 비명이자 침묵”(이영광, 추천사)의 목소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근화의 시는 한눈에 가늠하기가 어렵다.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도 그럴 것이다”(`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라는 짐짓 무심한 표정의 일상적 어법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도달할 곳이 없는 세계”(`네덜란드인과 결혼하기`)와 사물에 대한 시인의 세심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시인은 “그냥 그럴 것”(`집으로 가는 길`)인 예사로운 풍경들 속에서 `정신의 거처`로서의 시를 찾는다. “우스운 과거와 무시 못할 가족력”(`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이 있고 “적막과 허무”뿐인 “정적과 암흑의 놀이터”(`코맥스 200)인 우리의 인생이 결국은 “불가능한 꽃/불가해한 꽃”(`산유화`)으로 피어나는 한편의 시라는 깨달음에 이르며 삶의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다.

시인에게 일상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눈빛이 떠”도는 미지의 세계이며, 시인은 “네가 나의 절벽이 되는 삶”과 “재가 너의 향기가 되는 죽음 위에”(`눈사람`) 절박한 마음으로 서 있다. 공감과 소통은 단절되고 곳곳에서 “지옥의 음악 소리”가 “부글부글 흘러나오는” 이 공포의 세계에서 더이상 “슬픔은 들리지 않”고 “고독은 냄새 맡을 수 없”(`가짜 논란`)으며 고통은 흔적도 없다. 하지만 시인은 “길 위에 더럽게 버려진” 채 “오늘도 살아야”(`요양원`) 한다. “길거리에 마구 내뱉어진” 그가 돌아갈 집이라고는 비록 “헛된 망상처럼 높고 반듯하고 분명”(`내 죄가 나를 먹네`)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지만, “침묵과 울분 속에서” 마치 “세상을 다 아는 눈빛”(`새의 가슴`)을 번뜩이면서 우리들의 삶에 다가서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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