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별 류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시집
류근(50) 시인의 두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나 18년간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았던 류 시인은 2010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시편들을 모아 엮은 첫 시집`상처적 체질`에서 개인의 기억에서 비롯한 아픔을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애수로 확장시키며 상처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드러냈다.
`어떻게든 이별`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홍정선은 류근이 등단 이후 18년 동안 “시로부터 도망다닌 것처럼 보이는 세월에 대한 비밀”이 이번 시집 속 72편의 시들에 숨어 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시인은 첫 시집 출간 후 6년이라는 시간만큼 차곡이 쌓인 상처를 다시 진솔한 언어로 매만지며 돌아보는 한편, 아물지 않는 그 상처와 `어떻게든 이별`하려는 결심을 거듭해 시도하고 있다.
“어제 나는 많은 것들과 이별했다 작정하고 이별했다 맘먹고 이별했고 이를 악물고 이별했다 [….] 어제는 어제와 이별하였고 오늘은 또 어제와 이별하였다 아무런 상처 없이 나는 오늘과 또 오늘의 약속들과 마주쳤으나 또 아무런 상처 없이 그것들과 이별을 결심,하였다” ―`어떻게든 이별`부분
“그런 때에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보다 떠나간 사랑에 대한 시들이 많은데, 고(故) 김광석의 노래로 널리 불리는 초기 시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토로하던 류근 시의 화자는 긴 세월 상처로 남은 애인, 애인들에게 어느덧 “결별의 말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당신을 만나 “남김없이 불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이제 선뜻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어떤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제 기억과 상처에게도 전하는 인사일 것이다. “가족에게 비겁했고, 가족 때문에 비겁했다. 애인에게 비겁했고, 애인 때문에 비겁했다. 시 때문에 비겁했고 시에게 비겁했다”(홍정선). 모든 비겁함에 이별을 고하며, 겪어온 어떤 상처보다 더 쓰라릴 `고독`을 화자는 견딜 수 있을까. “내게서 한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일없이 왔다 가는 밤과 낮이 아프다”(`고독의 근육`).
지극한 고독과 깊은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시가 버겁지 않은 건 류근이 지닌 자질 덕분일 것이다. 첫 시집에서 보여준 “가장 진지하고도 가장 가볍게 타자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스며드는 일종의 방법적 사랑”(최현식)이라는 의미에서의 통속미(通俗美)는 이번 시집에서도 유효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