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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소박한 마음 `오롯이`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9-09 02:01 게재일 2016-09-0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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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지음  창비 펴냄·시집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울고 들어온 너에게`전문)

섬세한 시어와 감성이 돋보이는 정감어린 서정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섬진강 시인` 김용택(68)이 신작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창비)를 펴냈다.

`하찮은 존재들의 무한한 가치`를 노래하며 서정시의 새로운 진경을 보여준`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온갖 비루와 원망이 사라진 가장 깨끗한 가난의 미학”(김정환, 추천사)을 선보이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지금-여기의 살아 있음을 최대한 이행하는 데에서 삶의 가치와 행복을 찾는”(김수이, 해설) 시인의 소박한 마음이 오롯이 깃든 간결하고 단정한 시편들이 오래도록 가슴속에서 여울지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나는/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어느날 나는 태어났고/어느날 당신도 만났으니까.//그리고/오늘도 어느날이니까.//나의 시는/어느날의 일이고/어느날에 썼다.”(`어느날` 전문)

김용택의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친근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삶의 노래`이다.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오래 한 생각`) 그날그날 “있는 힘을 다하여”(`받아쓰다`) 살아온 이야기이며, “새벽에 일어나/시를 쓰고, 쓴 시를 고쳐놓고 나갔다 와서/다시 고치”(`베고니아`)며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내가 산 오늘을/생각하”(`아버지의 강가`)며 “한줄의 글을 쓰고 나면” “다른 땅을 밟고 있”(`한줄로 살아보라`)는 `낯선 나`가 말한다. “그래, 어디, 오늘도/니들 맘대로 한번 살아봐라.”(`가을 아침`) 김수이는 해설 첫머리에서 이 시집을 “`살다`의 활용에 의한, `살다`의 활용을 위한 시집”이라고 명명한다. 그렇듯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곧 `사는` 일이다.

어느덧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된 시인은 “갈라진 발뒤꿈치 틈으로 외풍이 찾아드는지” “자꾸 아랫목 콩자루 밑을 찾는” “어머니의 발”과 “밖으로 밀려”난 “굳은살 박인 아버지의 복사뼈 절반”(`아버지의 복사뼈`)을 회상하며 자신에게 다가올 노년의 삶을 차분히 곱씹어보기도 한다. 시인은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어머니의 눈에서 “깊고도 아득한,/인류의 그 무엇”(`우주에서`)을 발견해내기도 하고, “몇해를 걸”어 자신이 도착한 곳이 결국은 “도로 여기”임을 확인하면서 “또다른 생”(`도착`)의 가능성을 담담히 응시한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쓰면서 편안함을 얻었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 김용택 시인
▲ 김용택 시인
시인은 최근에 고향 진메마을로 돌아가 정착했다. 한국 현대시사에 한 획을 그은 명편`섬진강`연작의 발원지인 그곳에 이르러 시인은 “귀환은 평화롭고 안착은 아름답다”(`익산역`)고 고백한다. “인생이 시작되었던” 그곳에서 시인은 “속셈 없는 외로움”(시인의 말)을 찬찬히 가다듬으며,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이 하는 말”을 겸허한 마음으로 고스란히 “땅에 받아적으며”(`받아쓰다`)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저물녘, 묵묵히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저 섬진강 가를 거닐며 끊임없이 순진무구한 시심을 길어올리는 시인의 뒷모습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순간 세상이 환해지는 행복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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