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우리나라의 국민화가로 익히 알고 있는 이중섭(1916~1956)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길지 않은 작가의 삶 속에서 예술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할 정도로 부유했던 삶을 살았던 작가에게 한국전쟁은 그의 운명을 바꿔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향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가족과의 생이별이 주는 그리움은 그의 작품 속에 자서전처럼 고스란히 남겨졌다.
부산과 제주, 통영, 대구, 왜관 그리고 서울로 이어진 고달픈 피난의 여정은 40세라는 짧은 천재화가의 삶 전부가 되고 말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은지화를 비롯해 유화, 드로잉, 엽서화, 편지화 등 200여 점의 유작과 자료들이 소개되고 있다.
식민시대와 해방기, 한국전쟁을 관통하는 작가의 비극적인 삶의 흐름 속에서도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순수함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유화작품들의 묵직하고 진지함을 감상하는 재미보다 드로잉 작품이 주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조형적 감성을 마음으로 읽어 보는 재미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이중섭이 창안한 은지화는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지 위에 형상을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내면, 긁힌 부분에만 물감 자국이 남게 되는 원리에서 만들어진 표현매체이다.
그렇게 해서 깊이 파인 선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드로잉이 완성되는 것이다.
드로잉(Drawing)이라는 표현 방법은 서양미술이 유입되던 20세기 초반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해 이제는 미술의 한 분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선을 위주로 하여 그리는 행위, 혹은 작업 전반을 위한 스케치, 도안, 초벌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사전적 의미로는 `그리다` 외에도 `끌어내다`, `뽑아내다`, `당기다`, `잡아 늘이기` 등의 넓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연필이나 펜, 콘테, 붓 등에 의해 그려진 결과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드로잉은 어떤 대상에서 정수를 뽑아내는 행위를 통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최소한의 수단과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다.
드로잉 즉, 그린다는 행위는 자신의 주변의 대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며, 그 생각은 화면으로 표현되는 최초의 기록이며 흔적이 된다.
다시 말해 드로잉이 가지는 `그리다`의 의미는 한 화면 속에 시간과 공간을 함축해 표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중섭의 은지화와 편지화, 엽서화에 나타난 조형미는 드로잉이 주는 간결함과 순수하고 천진함이 주는 해맑은 이미지로 함축되고 있다.
선의 율동이 만들어 내는 운동감과 반복된 묘사에서 오는 공간감의 표출은 드로잉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 같다.
드로잉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단순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그 보다 훨씬 넓은 기능을 가지고 예술가의 관념이나 사고의 상태를 밀착시킨 상태에서 형상을 그리거나 혹은 상징화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예술적 관념 속에서 표출되는 진정한 리얼리티를 이번 전시를 통해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