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레비나스자크 데리다 지음 ·문성원 번역문학과지성사 펴냄·인문
데리다의 해체론은 `텍스트는 불변의 의미를 지닌다`는 기존의 사고를 뒤엎은 것으로, 그의 삶도 일체의 권위에 맞서는 실천적 저항으로 일치됐다.
`타자의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는 흔히 `네 문화의 철학자`로 불린다. 그는 러시아의 변방 리투아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독일철학을 공부했고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주체의 의지에 따라 외부의 대상을 재단하고 왜곡하는 폭력성이 잠재된 서구철학의 전통 속에서`타자의 철학`을 정초한 레비나스는 철학에 고통의 흔적을 남겼고, 윤리학을 제1철학의 자리로 격상시킨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아듀 레비나스(문학과지성사)`는 1995년 12월 25일 89세로 세상을 떠난 철학자 레비나스의 장례식장에서 데리다가 낭독한 조사 `아듀`와 레비나스 사망 1주기를 기념해 열린 학회에서 데리다가 개막 강연으로 발표한 `맞아들임의 말`을 엮은 책이다.
이 글들에서 데리다는 `타자`, `환대` 등에 대한 레비나스의 철학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고 정리함과 동시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면들과 앞으로의 논의에 열려 있는 가능성들을 짚어본다.
이 책에서 데리다는 `아듀``환대``맞아들임``무한``응답``타자``윤리``여성성`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레비나스의 철학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고 정리함과 동시에 그의 철학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면들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들을 짚어보려고 한다. 따라서 레비나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뿐만 아니라 데리다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특히 이 책은 한 철학자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64년 레비나스의 주저 `전체성과 무한`을 분석한 논문`폭력과 형이상학`을 발표한 이후로, 레비나스의 철학과 끊임없는 대결을 펼쳐온 데리다가 “아듀”라는 추도사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데리다는 다른 곳에서 “아듀”라는 말이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사용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하나는 다른 서술적인 말들에 앞서 하는 인사나 축복의 말로 “안녕” “반가워” 등을 의미한다. 두번째는 헤어질 때, 혹은 영원히 헤어질 때,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하는 인사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데리다가 이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신에게로(a-Dieu)`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원제 `Adieu a Emmanuel Levinas`는 `레비나스를 신에게로`라는 의미로도 풀이될 수 있다. 데리다는 “아듀라는 인사는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아듀는 “존재와 무의 양자택일을 거부하면서”, 한정된 우리의 생각과 삶을 무한으로, 잉여의 의미로 데려간다. 즉, 레비나스를 신에게 보낸다는 것, 신에게 맡긴다는 것은 레비나스의 사상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고 그를 맞아들이는 것,
그의 철학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함의와 발전 가능성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 책을 옮긴 문성원 교수의 해석을 덧붙이자면, `아듀`는 데리다가 이제 신에게 맡겨진, 무한한 가능성에 맡겨진, 그 가능성을 채워나갈 우리에게 맡겨진 레비나스에게 새롭게 건네는 인사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는 레비나스의 사상을 되짚어보고 그것을 둘러싼 20세기 말의 정치적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에 대한 데리다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펼쳐나간다. 먼저 세상을 떠한 위대한 철학자에게 뜨거운 존경과 우정의 말을 건네면서도, 거의 철학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며 여러 각도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레비나스가 강력한 유대적 전통의 영향 아래 사유를 전개했다면, 데리다는 레비나스가 내세운 윤리적 명제들이 어떻게 보편적이 될 수 있는가를 계속 물고 늘어진다. 대표적으로 피난처로 부각되는 예루살렘이 그러한데, 데리다의 논의 속에서 예루살렘은 특정한 지역명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또한 레비나스가 타자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는 윤리, 정치 너머의 윤리를 강조한다면, 데리다는 레비나스가 말한 `환대`와 `맞아들임`의 개념을 통해 이 윤리의 문제가 어떻게 정치와 엮일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 그는 “도처에서 모든 종류의 피난자들”이 “집단 수용소에서 유치 수용소로, 국경에서 국경으로, 매일매일 감옥에 갇히고 추방”되며 “환대에 반하는 범죄”를 견뎌내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환대에 대한 진중한 숙고가 필요함을, 레비나스의 논의를 경유해 재차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