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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품격(品格) 1

등록일 2016-08-25 02:01 게재일 2016-08-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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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전국이 펄펄 끓고 있을 때 `느림의 섬`으로 유명한 청산도와 보길도에 다녀왔다.

여기까지만 보고 누군가는 휴가라도 다녀왔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휴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직 교육청으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산자연중학교 교사들에게 휴가는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단어이다.

필자를 비롯한 산자연중학교 교사들은 사전답사를 위해 지난 주 `느림의 섬`으로 유명한 완도 일원을 다녀왔다. 사전답사라는 말보다는 특성화 교과인 `산지여정` 교과의 수업 장소와 수업 프로그램 개발이 좀 더 정확한 말이다.

`산지여정`이라는 교과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먹는 먹거리 생산지 현장을 직접 방문해 생산 전 과정에 대해 현지 생산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해봄으로써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에 대해 배우는 산자연중학교만의 특성화 교과이다.

이 때의 먹거리는 제철 먹거리를, 생산 방법은 최대한 인위적인 방법이 배제된 자연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을 의미한다.

혹 다른 학교의 수학여행을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건 수학여행이 체험활동이라면, 산지여정은 특성화 교과 수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여행이 여행사에 의해 진행된다면, 산지여정은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학교에서 다한다.

9월에 있을 산지여정은 `슬로푸드(slow food)와 우리의 몸`이라는 주제로 수업이 진행 될 예정이다.

수업 주제가 정해지면 교사들은 바쁘다. 다른 학교 교사들이야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내려온 교육과정과 교과서로, 한 줄 세우기 시험을 위한 틀에 박힌 수업만 하면 된다. 산자연중학교에서 하는 산(生) 수업들은 분명 내신(內申)을 위한 죽은 수업과는 다르다. 학생들을 살리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육 체계로는 어림도 없다. 산자연중학교에는 수업 내용, 수업 방법, 평가, 교재 개발 등 교육의 판을 새로 짜야 하는 교과가 무려 여덟 개나 있다. 그것을 교사들이 다한다.

한 때 `느림`이 대세였던 때가 있었다. 당시 `빠름`은 많은 사회문제들의 원인이었다.

빠름은 모든 일에 있어 대충 대충을 강요했고, 그 대충 대충은 부실(不實)로 이어졌다. 부실은 신뢰를 무너뜨렸고, 믿음이 없는 사회는 갈등만 난무했다.

갈등은 가정과 학교는 물론 사회 전 분야로 독버섯처럼 퍼져 나갔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돈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빠름에 따른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느림을 제시했다.

느림의 섬, 슬로시티들이 빠름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찾듯 그곳으로 빠르게 몰려들었다.

슬로시티 가입을 위해서는 친환경적 에너지 개발, 차량통행 제한 및 자전거 이용, 나무 심기, 패스트푸드 추방 등 슬로시티가 되기 위한 조건들을 갖춰야 한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들도 분명 처음에는 이런 가입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필자는 전국이 펄펄 끓던 지난 주 느림의 섬에도 더 이상 느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국을 끓게 만든 폭염은 섬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느림은 행복`이라는 글귀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펄펄 끓는 이유는 바로 `느림`이 품격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대형버스가 빠르게 질주하는 느림의 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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