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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파헤쳐 지는 `진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8-19 02:01 게재일 2016-08-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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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이혁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장편소설

올해 제 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이혁진(36) 작가의 장편 소설 `누운 배`(한겨레출판)는 총 232편의 경쟁작 중 아홉 명의 심사위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선택된 작품이다.

`누운 배`는 중국의 한국 조선소에서 진수식이 끝난 배가 갑자기 쓰러지며 시작한다.`배가 눕는다`는 압도적인 상징으로 다른 후보작들과의 차이를 만든다. 그건 어떤 이미지나 문체가 가진 미적인 차이가 아니다. 그저 `사실`의 차이이며 `사실의 언어`의 차이다. `누운 배`가 상징하며 이야기하는 거대한 사실은, 누워버렸고 방치되어 우리의 눈 밖에 있는 우리의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어떤 사실을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심사를 맡은 황현산 평론가의 추천의 말 서두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내려앉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마 그 사실이 가진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누운 배`는 소설은 미적인 것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사실적인 것과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운 배`가 단지 `사실을 다루기만 한` 흔한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인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이 가진 디테일의 정확함과 정교함은 단지 리얼리즘 소설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뭔가 아깝다.`누운 배`는 앞선 어떤 리얼리즘 소설보다 차갑고, 단단하며, 무겁다. 소설가 김별아는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즘이 비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평했고, 평론가 정홍수는 “사실의 자리에서 인간 진실에 대한 끈질긴 열정과 상상을 읽었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다른 소설과의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누운 배`의 세상이 그려내는 풍경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장막을 벗겨내고,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무서운 진실을 코앞으로 들이밀어 그 진실에서 풍겨 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맡게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진실이 축적되며 이윽고 누운 배가 일으켜 세워지는 장면에 도달했을 때, 소설은 최근의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든 어떤 거대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장관을 바라보며 압도당한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의 한국을, 관료주의와 계급구조의 모순이 가득한 한국 사회가 가진 부조리를 떠올리고야 만다.

`누운 배`는 사회 소설인 동시에 기업 소설이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회사 생활 다 그런 거 아이겠나?”라는 말로 대변되는 문 대리, 오 팀장, 정 이사, 양 이사, 조 상무, 황 사장 등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쉽게 우리가 몸담은 회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은 치밀하게 직조하고 치열하게 밀어붙여 소설 속 회사를 현실의 회사 위로 일으켜 세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 곳곳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고, 과거에 했거나 지금 하고 있거나 미래에 할지도 모를 행동을 대신하는 인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부인하든 부인하지 않든, 소설 속의 그 무수한 모습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이다.

소설의 배경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에 조선소를 세워 진출한 한국의 대기업 조선회사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말단 직원이다. 취업을 위해 이 회사에 입사해 어쩌다 보니 중국에 있는 조선소까지 오게 된 나는 상사의 지시에 잘 따르고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만, 사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목도하며 끊임 없이 회의를 느낀다.

회사는 합리성과 효율성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오너의 말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 밑으로 층층이 서열화된 수직 구조에서 더 위에 있는 사람, 연줄이나 힘을 가진 사람의 말이 결론이 된다.

이런 회사 조직의 생리를 생생히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실제 신입사원으로서 직접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혁진 작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년 가까운 잡지사 기자 생활을 거쳐 소설 주인공처럼 중국 진출 조선소에서 3년 남짓 일했다고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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