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들의 춤최수철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소설집
`이상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수상 작가인 중견 작가 최수철(58)씨가 여섯번째 소설집 `포로들의 춤`(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우리 시대 가장 지적인 소설가 중 하나인 최씨는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맹점`이 당선돼 등단한 이래, `의식을 추적하는 집요한 언어`와 무수하고 치밀한 감각의 연쇄가 낳은 `감각의 무정부 상태`를 그린 작품 세계로 현대 한국 소설사에 뚜렷한 족적을 새겨왔다.
`포로들의 춤`은 작가가 2014년 여름부터 지난해 겨울까지 발표한 중편소설 3편을 묶은 연작소설집으로,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다.
스위스 출신의 사진작가 베르너 비숍(1916~1954)이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찍은 `유엔 재교육 캠프에서의 스퀘어댄스`에서 출발한 이번 연작은 피로 얼룩진 50년대 포로수용소 광장에서 회백색 최루탄 연기가 난무하는 70~80년대 대학가 시위 현장으로, 다시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붉은 악마`의 물결로 넘쳐났던 시청 앞 광장으로 한국 현대사의 시계추를 종횡무진으로 옮겨놓고 있다.
실재하는 역사 속에 틈입한 의식과 상상력의 소설 언어가 낱낱으로 있던 사건과 의혹, 구멍과 관계들을 퍼즐처럼 꿰맞춰가는 치밀한 구성이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연작 `포로들의 춤`은 영혼까지 빼앗겨버릴 만큼 공포와 치욕으로 참혹했던 공간의 인물들을 형상화하고 역사의 이면을 추적해가는 한편, 가슴 묵직한 질문을 함께 던진다. `사진에 봉인된 과거의 역사가 소설 속에서 어떻게 현재의 역사로 이어질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역사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경험해야 하는가`.
`거절당한 죽음`은 포로수용소의 비극이 대를 걸쳐 포로였던 남자의 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이 대학 시절 사랑한 여자 `한수영`은 인민군 출신으로 거제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진 아버지의 상처를 온몸에 아로새기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임진강을 건너 월북을 시도하다 초병들에게 들켜 사살당했다. 한수영은 대학에 들어와 군사정권의 프락치로 활동하는 남자와 사귀게 되고, 그 옛날 아버지를 구하려 애썼던 것처럼 위기에 빠진 그 남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는 거제 포로수용소의 참상이 더욱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전역을 뒤덮던 2002년, 시청 앞 광장에 운집한 `붉은악마`들이 외치는 한목소리의 구호 위로, 50년 전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철조망에 옷을 모두 벗어 걸어놓고 빨간 알몸으로 수십 명씩 스크럼을 짜서 구호를 외치며 광장을 온통 핏물로 물들이던 포로들의 목소리가 겹치며 독자를 압도한다. 소설은 홀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오로지 줄무늬 옷만을 입고 자란 광고기획사 직원 `나(최하람)`와 심리상담센터 색채심리사이자 `붉은악마`의 중앙사무국 운영위원인 `윤서강`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인 `거제, 포로들의 춤`은 작가가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베르너 비숍의 사진을 우연히 접하고 호기심을 갖는 과정과 실재한 역사적 사실을 다큐멘터리처럼 설명해 놓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