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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즐거움

등록일 2016-08-10 02:01 게재일 2016-08-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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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2016 리우 올림픽이 개막했다. 스포츠에 관심 많은 나로서는 올림픽 시청이야말로 여름휴가다. 혹자는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 그것도 국가 대항의 `미니어처` 전쟁에 몰입해 열 올리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너무 몰입해서 결과에 집착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몸뚱이`들의 부대낌이라든가 우리 삶에 어떤 긍정적 영향도 줄 수 없는 무의미한 경쟁이라든가 하는 식의 폄하는 더욱 곤란하다. 몸 그리고 몸짓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스포츠 경기만큼 감동적인 영화나 문학도 흔치 않다.

대회 때마다 밤잠을 설쳐가며 전 종목을 시청한 내게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다면, 딱히 하나를 꼽을 수 없다. 황영조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의 모리시타를 따돌리고 마침내 월계관을 쓰던 순간이나 여홍철이 도마 위를 높이 날아올랐다가 지상에 불안한 착지를 하던 장면, 문대성의 뒤돌려차기, 최민호의 연속 한판승,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눈물의 은메달,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등 우리 선수들의 활약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올림픽의 감동은 국가를 넘어선 `인간`의 드라마라는 데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육상 400미터 준결승에서 영국의 데릭 레드먼드는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는다. 포기하지 않고 일어선 그는 결승점을 향해 절뚝거리며 걷는다. 고통 때문일까 아니면 허탈함 때문일까.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끌며 울먹이는데, 관중석을 넘어온 한 중년 남자가 곁에서 부축을 시작한다. 아버지였다. 모든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텅 빈 트랙 위, 함께 결승점을 통과하는 부자를 향해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어린 내 눈에 그 장면은 몹시 감동적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역도 무제한급 결승에서 올림픽 2연패를 노리던 독일의 로니 벨레르가 압도적인 무게를 들어 올려 우승을 거의 확정, `다시 이 매트 위에 오를 일이 없다`는 의미로 신고 있던 역도화를 벗어 관중석으로 던지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다음 선수는 마지막 시기를 남겨둔 러시아의 체메르킨, 우승권에서는 이미 멀어져 있었다. 그가 세계기록보다 6.5kg이나 무거운 무게를 신청하자 경기장이 술렁였다. 누구도 그가 성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모두의 불신과 비웃음을 바벨과 함께 들어 올렸고,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확신과 확신의 싸움, 집념을 이기는 집념, 스포츠란 바로 그런 것이다.

지난 런던 올림픽도 그렇고, 이번 리우 올림픽을 보면서 크게 느끼는 것은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가 참 많이 성숙했구나 하는 점이다. 예전엔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를 어른들 옆에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실수를 하거나 경기에서 지면, 최선을 다해 싸워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조차 `바보`, `병신`, `죽일 놈` 따위 온갖 욕설이 날아들었다. 중계방송이나 언론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메달에 그치다`, `동메달에 머물다`, `통한의 패배`, `문턱에서 좌절` 같은 부정적이고 기운 빼는 수사를 모조리 갖다 붙이곤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 인식이 바뀌었다.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 예선에서 탈락한 선수에게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게 올림픽 정신이고 올림픽의 진짜 즐거움이다. 우리 사회가 기성세대의 결과 중심주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선을 다한 과정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 실패와 좌절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기쁘다.

착하고 순한 우리 선수들만 아직도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내 자신이 한심하다`라고 말한다. 좀 더 뻔뻔하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우리들을 대표해 거기 있어준 것만으로 감사하다. 그런 말들은 국민에게 해를 입히면서도 단 한 번 고개 숙인 적 없는 저 뻔뻔한 낯들, 국민 위에 군림하며 당당한 저 어깨들, `5만원 한우 선물`에 몹시 당황 중인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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