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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8-05 02:01 게재일 2016-08-0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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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백야이윤학 지음문학과지성사·시집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수상 시인 이윤학의 아홉번째 시집`짙은 백야`(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1990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시인은 3~5년 주기로 성실하게 시집을 출간해왔고, 그때마다 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사소한 존재들에 관심을 쏟고 생의 결핍을 성찰적 시선 안으로 끌어들이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깊은 아름다움을`발견`하는 이윤학 특유의 방식은, 5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깊이를 더한다.

태어나 살아가고 언젠가 묻히게 될 사적인 공간, 그곳은 `농촌`이자 제이, 제삼의 고향이며 과거의 기억에서 미래의 모습을 읽어내고 현재의 `늙은 시절`을 기록하게 하는 곳이다. `십대의 몸` `칠십의 마음`이었다 어느덧 `칠십의 몸` `십대의 마음`으로 살게 된 시적 자아가 기록하는 `늙은 시절`은 이 시집에서 영원한 삶의 무덤인 동시에 생명과 감각의 터전이 된다. 언뜻 처연해 보이는 사적인 역사를 투영해 바라본 곁의 존재들은 그러나 죽음 근처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생명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나타낸다. 시인은 동물과 식물, 모든 생명들의 원천이자 무덤인 자연에서 개별적 삶들의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삶엔 마치 “짙은 백야”처럼 두터운 안개가 끼어 있다.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지만 어디로 가든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길을 우리는 걷는다. 이윤학의 시에서 시적 자아를 포함한 존재들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사월의 눈`) 모를 삶이라는 길을 “필사적으로 걸어”왔다.

“가난을 즐기는 게으름뱅이가 되려다 실패한 수천만번째 사례”(`공터의 벽시계`)인 “사내”에게는 이제 사랑조차 서로에 대한 “확대 해석”(`하리 선착장`)이고 “어떤 사랑도 실패한다는(`누옥의 방 한 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기에 그저 “드러누워 병나발을”(`사일로가 보이는 식탁`) 분다. 이윤학이 응시하는 건 모두 “또 하루를 산 것이 대견해 눈물이”(`서대길`) 날 법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 쇠함에 지극한 슬픔이나 절망은 없다. 소박하고 사소하고 어쩌면 늙거나 낡고 약한 존재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지역 이름이나 꽃이름들,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제목들로 꾸려진 이 시집 속 3부 62편의 시들은 어머니들과 고양이, 개, 닭, 물고기, 나무 등 모든 생명들의 “무덤”에 다녀오고 있는 중이다.

“푹푹 찌던 지난 세월이” “몰려왔다”. “많은 징검다리를 밟고 여기까지 왔다”(`뒤표지 글`). 갖은 풍경과 생애로 구성되고 조직된 시로써 마침내 마주하게 된 것은 무엇일까. 벼름박(벽)에 걸어둔 간드레(광산의 카바이드등)와, 폐광된 갱도를 따라간 바닷물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묻힐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시인의 말`). “명감도 보고 개암도 보고 정금도 보고 나를 만나지 못한 나도 보았다”.

그렇게 이윤학의 시는 현실의 시간을 부정하되 공허에 빠지지 않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깊은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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