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휴가철이다. 다들 바다로 계곡으로, 또 해외로 나가 도심이 한산하다. 수천만 명이 동시에 휴가 여행을 간다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모르는 바 아니다. 공장은 한 번에 쉬고, 협력업체가 쉬면 기업도 쉰다. 자녀들 방학 일정과도 맞추려다 보면 이 시기 외엔 여의치 않다. `7말8초 여름휴가`가 보편 인식으로 뿌리박힌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너무하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공장 내지는 군대 같다.
공중에서 찍은 해운대 사진을 보니 바닷물은 보이지 않고 형형색색 수영복 차림 인파뿐이다. 마치 당근과 오이, 감자, 파프리카, 가지, 브로콜리 등 갖은 채소가 들어간 볶음밥 같다. 안 그래도 폭염에 데워진 바닷물인데, 그 안에서 오줌 누는 얌체들 때문에 해수 온도가 더 올랐을 것이다. 해수욕이 아니라 온천욕이다. 물살을 헤치는 대신 무수한 뱃살과 옆구리 살을 헤쳐 나아간다. 워터파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설날 아침 목욕탕인지 분간이 안 된다.
계곡은 좀 낫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별로 넓지도 않은 물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물놀이, 뱃놀이, 낚시, 다슬기 줍기, 설거지, 목욕, 빨래, 물수제비가 이뤄진다. 물밖엔 썩은 수박껍질과 퉁퉁 불어터진 라면 면발이 악취를 뿜어대고, 술판, 고스톱판, 고성방가, 노상방뇨, 4륜바이크들의 질주, 청소년들의 집단 흡연, 온갖 욕설과 음담패설, 아기들 울음소리, 파리떼들의 비행이 대낮을 가득 채운다. 이게 휴가라면 차라리 회사에서 일을 하겠다. 나도 `7말8초` 바캉스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끼리 강원도 계곡에 갔다. 물안경을 쓰고 잠수해 노는데, 눈앞에 무언가가 금빛으로 반짝였다. 수면을 통과한 햇살이 그 물체 위에 햇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건 금이야` 확신하며 손에 쥔 순간 금은 손에서 물컹거리며 부서졌다. 손을 코에 가져다대봤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금이 아니라 똥이었던 것이다. 어떤 미개한 인간이 상류에서 배변을 했던 모양이다. 황금이란 헛되고 헛되구나, 한순간 빛나다가 결국 손에서 부서지는 똥이로구나! 물질의 허망함을 나는 그 소년 시절에 벌써 깨달았다.
스무 살 여름에 친구들과 대천 해수욕장에 텐트 치고 놀았다. 밤에 삼겹살을 굽고 찌개를 끓여 술 마시려는데 갑자기 강풍이 몰아쳐 모래가 음식을 덮쳤다. 몇 수저 먹지도 못한 고기와 국물을 버리고, 잡친 기분에 안주 없는 술을 마시다 돗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모기떼에 실컷 물린 발이 팅팅 부어 있었다. 운동화를 신는데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순간 세상 짜증이란 짜증이 다 내 것이었다. 웃고 놀리는 친구를 하마터면 두드려 팰 뻔했다.
꽉 막힌 고속도로, 꼼짝할 수 없는데 애기는 자꾸 울고, 큰애는 화장실 급하다고 보채고, 아내는 가스 불 안 끄고 온 것 같다며 차를 돌리잔다.
운전하는 남편도 배가 고파 죽겠다. 겨우 도착한 휴가지, 열은 열대로 뻗쳐 있는데, 평소 요금의 예닐곱 배 `극성수기` 값을 요구하는 숙박업소, 생수 한 병 3천원, 컵라면 하나 5천원 받는 바가지 장수, 대동강 물장사하듯 파라솔 하나 꽂고 자릿세 뜯어가는 악덕 상술에 `뚜껑`이 열린다. 간신히 화를 누르고 야외에 자리를 펴 고기 굽는데, 예보에 없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당신이 날짜 정했잖아!`, `당신은 뭘 했는데?`, `진작 좀 알아봐서 해외로 갈 것이지…`, `애 데리고 비행기를 어떻게 타!`,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뭐? 당장 짐 싸!`……
휴가를 분산해 쓰자고 제안하거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서 여유롭게 보내자는 빤한 말 하진 않겠다.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겠는가. 이미 와버린 `7말8초` 바캉스, 물릴 수도 없다. 사소한 일에도 금방 짜증나고 부아가 치밀겠지만 부디 마음을 다스리고, 참고 또 참으시라. 자칫 가족 여행이 가족 연행으로, 휴가가 휴거의 날로 바뀔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