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인기를 끈 한 햄버거 가게가 한국에 상륙했다. 개점 첫날부터 사람들이 수백 미터씩 줄을 섰다. 일부는 밤샘까지 했다고 한다. 다른 가게 햄버거에 비해 두세 배 정도 비싼데도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항생제 쓰지 않은 쇠고기와 싱싱한 채소, 고객이 조리과정을 볼 수 있는 오픈키친이 이 가게의 특징이다. 기존 패스트푸드의 허접스러운 재료와 맛에 싫증난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 것이겠지만, 이 찜통더위에 햄버거 하나 먹겠다고 두 시간씩 줄을 서는 건 진풍경이 분명하다.
`뉴요커들이 줄 서서 먹는 햄버거`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신문물`을 먼저 접하려는 젊은 세대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SNS등 온라인 미디어에서 자꾸 떠드니까 `나도 한번 먹어보자`는 군중심리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에는 광우병 쇠고기라며 `미국 아웃`을 외치던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 햄버거에 열광하는 걸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냐고 묻고 싶겠지만, 군중심리가 그렇다. 금방 얼굴을 바꾸고, 금방 뿔뿔이 흩어진다.
`포켓몬고` 열풍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다들 하는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포켓몬고의 성지가 된 속초에는 이 군중심리를 틈탄 한철 장사가 성행 중이다.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이제는 파리 날리는 치즈등갈비, 불닭, 과일빙수, 조개구이 식당 등 `맛집`의 흥망성쇠도 그러하다. 몇 해 전 `강남스타일`의 대유행과 꿀 바른 감자칩 대란, 영화 `명량`의 기록적인 흥행 역시 군중심리가 이뤄냈다. 그게 어디 1천700만명이나 볼 영화인가.
나 또한 철저한 군중이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지만 옆에서 법석을 떨면 엉덩이가 따라 들썩인다. 남들 다 간다는 찜질방을 서른 살 넘어서야 가보고, 소위 `핫`하다는 이태원에서 술 마시고 놀기를 지난주에 처음 해볼 만큼 유행에 무디지만, 페이스북에 열중하거나 방송 유행어를 어쭙잖게 흉내 내기도 하고, 간혹 `착한 식당` 같은 델 기웃거리는 걸 보면 별 수 없는 군중이다. 초등학교 때 소년한국일보에서 콜라 광고 지면을 오려 편의점에 들고 가면 콜라 한 캔 공짜로 준대서 신문 쪼가리 들고 두 시간 줄 선 적도 있다.
햄버거와 포켓몬고, 맛집 유행을 지켜보는 마음이 안쓰럽다. 내 눈엔 저 사람들이 너무나 외로워 보인다. 나도 외롭다. `군중`이 되고 싶은 심리가 나쁜가? 군중은 동시대를 살면서 같은 사회에 속한 채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다들 `헬조선`과 `흙수저`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출구 없는 터널에 함께 갇혀 있다. 너무 어두워서 옆에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내 눈앞의 암흑에 고립되어 있다. 햄버거 가게 앞에 줄을 서고, 속초행 버스에 몸을 실으며 타인도 나와 같음을 확인하고서야 간신히 안도하는 사람들, 남들 다 하는 내 집 장만, 결혼, 취업에서 낙오되었다는 좌절감과 소외감을 남들 다 하는 햄버거 먹기, 포켓몬 잡기에의 참여와 성취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 받는 사람들이 군중이다.
`고독한 군중`을 쓴 데이비드 리스먼은 자본주의 사회의 `외부지향적` 인간은 타인의 생각과 관심, 유행에 집착하며 집단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활달하고 사교적이나 속으로는 고립과 소외에 대한 불안으로 언제나 괴로워한다. 햄버거 가게 앞에 줄 선 사람들은 서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군중에 속해있다는 안도감은 뱃속에서 햄버거가 소화되는 순간 함께 사라져버린다. 군중은 해체되고, 개인들은 다시 일인분의 고독과 소외를 안고 저마다의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파트 분양이나 땅 투기, 신공항 사업 같은 데 우르르 몰려가는 것보다 햄버거, 포켓몬이 훨씬 건강한 군중심리다. 부디 그렇게라도 불안과 결핍을 해소하길, 잠깐이나마 `남들 다 하는`에 속하길 바란다. 햄버거 가게가 들어선 강남은 서울에서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