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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못 믿죠?”

등록일 2016-07-22 02:01 게재일 2016-07-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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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수필가
청소년기는 어른과 어린이의 중간시기이다. 신체적인 변화는 물론 정서의 발달에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인격형성에도 중요한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인격체로 거듭나며 자아발견을 하는 시기이다. 사춘기라는 큰 변화를 겪는다.

대학생 아들을 둔 나는 자녀의 청소년기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이해를 하며 키웠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빵점짜리 엄마였다. 생각과 욕심이 앞섰기에 이해는커녕 대부분의 시간을 야단치는 데 허비했다. 아이의 인격은 뒷전이었고 부모의 권위가 우선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보여준 아들의 행동은 무언의 항변이거나 반항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공부만을 강요했고 아이가 컴퓨터게임이라도 하고 있으면 독서실로 내몰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작정하고 독서실을 가겠다는 아들에게 칭찬을 해주었어야 했지만 나는 불시에 가방 검사를 했다. 아들은 이런 엄마의 극성스런 행동을 예견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아주 당당하게 검사에 응했다. 가방 안에서 담배가 나왔다. 기가 막혔다. 무슨 현행범이라도 잡은 듯 그 날 이후 더 심하게 야단을 쳤다.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홀로 아프고 힘들었다. 그 때 아들이 반항하듯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늘 내가 뭘 해도 못 믿죠?”

피우지 않았다는 아들의 말을 듣기는커녕 다그치기만 하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관계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소통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대학교 입학 후 어느 날 아들과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술잔이 오가고 얼굴이 불콰해지자 아들은 담배사건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았다. 늘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가 미웠고 담배는 피우기 위해서 가지고 다닌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걸 엄마가 보는 순간 아들에게 실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한다.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 그때라야 엄마 스스로도 공부에 대한 집착을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담배 사건은 아들에 대한 기대감의 변화와 소통의 전환점이 되었다. 늘 내 입장에서만 말을 했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아이 스스로가 선택한 엄마 길들이기의 한 방법이었던 셈이다.

아들의 경우는 비행을 위장한 긍정적 자기 노출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과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긴다. 너는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한다. 세상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에게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러했고 많은 부분에서 조급증을 냈다. 자녀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내 욕심을 먼저 내세웠으니 늘 잔소리가 차고 넘치지 않았을까?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녀에 대해 느긋한 유형과 조급한 유형이다. 나는 전적으로 조급한 엄마였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아이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하기보다 내 생각과 경험을 먼저 내세우게 된다. 자녀교육이 성공할 확률은 느긋한 유형의 부모가 훨씬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녀가 실수를 하더라도 관대하게 넘어가며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지름길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곁에서 지켜주는 방법이다.

최근에 대학생 아들과 또 한 번 큰 갈등을 겪었다. 휴학계를 내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들이 포기하기를 강요했다. 내가 가진 삶의 경험을 근거로 아들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인가.

현명하고 여유로운 부모가 되는 것은 이론처럼 쉽지가 않다. 조금 돌아가면 어떤가. 조금 늦으면 또 어떤가. 생각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믿고 바라봐주자. 그 선택으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고 있으니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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