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은 매일 경기에 나선다. 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엔 대충 하게 된다. 몇 가지 준비를 생략하고, 정해진 시간과 횟수를 무시한다. 그게 매너리즘이다. 매너리즘은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6년째 활약하며 통산 3천 안타를 눈앞에 둔 스즈키 이치로의 경우 단 하루도 대충 한 적 없다. 그는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 전 식사와 스트레칭, 러닝 등의 준비를 잘하기 위해 명상, 가볍게 걷기를 선행한다. 철저한 자기관리에 사람들은 경탄하지만 정작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늘 노력할 뿐이라고 말한다.
나도 어떤 형식이든 매일 글을 쓴다. 매너리즘은 스스로 만족할 때 찾아오는 것인데, 나에게는 한 번도 온 적 없다. 내 글이 형편없다는 걸 내가 너무 잘 아는 까닭이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매일 쓴다. 매일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다. 하나쯤 얻어걸리라는 심정으로 쓴다. 그러다 정말 하나 얻어걸리면, 그건 얻어걸린 것이므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쓴다. 나도 한번쯤 내가 쓴 시를 읽고 천하의 절창이라며 울고 싶다. 그러면 그때부터 나는 눈 뜬 장님이다. 대가로 칭송받는 시인, 소설가들의 글이 몹시 망가져 비틀거리는 걸 안쓰럽게 읽은 적이 많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면 대충 한다. 더 노력할 게 없다고 여기는 순간, `만렙`(최고 레벨)을 달성했다고 자만하는 순간부터 대충 한다. 노력과 매뉴얼보다 자신의 경험 및 능력을 신뢰할 때 방심이 스며든다. 그러다 망한다. 대충 하면 아흔아홉 번 성공해도 백 번째에 크게 망하고, 규칙대로 열심히 하면 백번 내내 이븐파는 친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경계 근무를 서나 꾸벅꾸벅 졸면서 산보하듯 하나 아무 일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대충 하다가 철책에 구멍이 나고, 인민군이 노크해서 귀순한다.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의 음식 맛이 예전 같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다. 이젠 대충 해도 장사가 되니까 비싼 재료는 줄이고, 오래 걸리는 과정을 생략한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오히려 이제 막 개업한 식당 음식이 훨씬 훌륭하다. 긴장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영동고속도로에서 끔찍한 사고가 났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관광버스가 도로 정체로 인해 멈춰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아 21살 여성 넷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여름휴가를 맞아 돈 모아 렌터카 타고 여행 다녀오던 길에 비명횡사했다. 사고 순간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 정말 참혹하다. 분노와 슬픔이 몰려오고, 생사 앞 인간의 무력함에 절망했다.
살인 버스를 몬 자는 수십 년 경력 베테랑 기사였을 것이다. 매일 하는 운전이라서, 오래 해온 일이라서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을 것이다. 나이 들어 체력과 시력, 반사신경이 감퇴한 건 생각 못하고, 제 경험과 기술만 철석같이 믿었으리라. 그 경험 가운데에는 조금 졸아도 아무 일 없고, 스마트폰을 만져도 아무 일 없고, 점심 반주를 하고 핸들을 잡아도 아무 일 없고, 규정 속도를 어겨도 아무 일 없던, `아흔아홉 번 대충`의 평화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매일 하는 일을 만만히 여긴 대가는 너무도 크다. 꽃 같은 목숨 넷을 어찌할 것인가?
미친 화차(火車)처럼 들이닥친 죽음을 피하지 못한 이들은, 직업이든 학업이든 매일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휴식과 충전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매일 하는 일을 대충 한 한 사람 때문에 매일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해온 청춘 넷이 죽었다. 아수라장이 된 영동고속도로를 보면서, 매일 하는 일을 대충 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안일함과 적당주의 때문에 매일 하는 일을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다. 세월호가 그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그랬다. 매일 하는 일에 정직한 우리들은 `개 돼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