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의 즐거움` 이시영 지음 창비 펴냄·시집
지금껏 13권의 시집과 1권의 시선집을 출간하고 24년간 제27회 만해문학상, 제6회 백석문학상, 제4회 지훈문학상 수상자로 새로운 시와 시인의 발굴에 힘써온 이시영 시인의 `시 읽기의 즐거움―나의 한국 현대시 읽기`(창비)가 출간됐다.
1996년 무렵부터 2015년에 이르기까지 긴 시차를 두고 쓰인 글들을 묶어낸 이 책은 1995년에 펴낸 산문집`곧 수풀은 베어지리라`이래 21년 만에 펴내는 시 산문집이다.
오랜 시간 시를 써오고 또 읽어온 그이지만 시에 대한 애정을 산문으로 적은 것은 지극히 드물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맹렬한 독서인, 예리한 판단력으로 정확한 비판에 주저하지 않는 드문 문인-편집자로 이름을 날린 이시영 시인은 시에 대해서만은 한없는 설렘과 순정을 간직하고 있다. `시 읽기의 즐거움―나의 한국 현대시 읽기`는 긴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선후배 시인들의 시를 읽고 벗해온 시인이 진솔하고 다정하게 써내려간 시와 사람에 대한 사랑의 기록이다.
1부는 시인이 열과 성을 다해 배우고 즐겨온 선배 세대의 시를 깊이 읽어낸 글들이 주류를 이룬다. 멀리는 백석에서 청록파의 박목월 조지훈을 거쳐 신경림 고은 김지하 김수영 김종삼까지 시인과 함께 따라 읽다보면 시를 즐기는 다채로운 방식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2부는 200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서 청중과 함께 읽은 시집들이 주를 이룬다. 장철문 안도현 나희덕 박형준 김행숙 등 모두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들의 신작시집 가운데 한두편을 골라 어떤 면이 놀라운지, 그 시가 왜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다. 때로는 리듬에, 때로는 시어에, 때로는 풍경과 대상을 구현하는 상상력에 감응하면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분석하기보다 그저 “감각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에서 시인이 생각하는`좋은 시`를 그려볼 수 있다.
3부에는 또한 1970, 80년대의 격동기 한국문학운동에 앞장서 참여해온 문인-편집자의 한 사람으로서 증언하는 험난한 여정, 그 시절을 함께 견뎌온 선후배·동료 문인들에 대한 정겨운 뒷얘기를 적은 글들이 쏠쏠한 재미를 준다. 24년간 남의 시를 가려 읽고 선택해야 하는 `창비시선` 편집자로서 지녔던 고뇌와 자부심, 고교 은사의 시를 돌려드려야 했던 곤혹, 김지하 시집과 관련해 군부독재 시절 겪은 수난의 역사가 오롯하다.
이처럼 문단사의 산 증인이자 누구보다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로서 시인은 2015년 한국문학판을 뒤흔든 표절 논란과 그로 인해 촉발된 문학권력 논쟁의 와중에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진지한 예술가는 늘 비주류`외 4편의 글은 극단적 비난과 비현실적 쇄신안이 난무하던 가운데 객관적 시선과 독보적인 균형감각으로 표절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함께 진정한 문학의 쇄신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글들이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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